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장로칼럼

 

믿음과 사랑

 

나의 부친은 북한에서 외아들로 태어나셨다.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이셨다. 아버지는 내가 청소년기에 일찍 작고하셨다. 내 아내도 친정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아내가 10살 되던 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도 아내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서 그런지 명절이 돌아오는 것이 그렇게 기쁜지 만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추석,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큰 선물을 안겨주셨다. 작년에 결혼한 맏딸이 아들을 낳은 것이다. 딸이 산후조리차 우리 집에 왔다. 우리 부부는 25년 만에 집안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게 되어 너무 기쁘고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세월의 빠른 속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작은 딸이 영화 한편 보러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작은 딸과 데이트를 하면서 본 영화는 ‘사도(思悼)였다. 딸과 영화를 보면서 문득 사도(使徒)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라는 것과 사도(思悼)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묵상했다.
사도세자는 선택받은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해야 할 부자(父子)와 가족 간의 관계는 미움과 증오로 변해버렸다. 결국 귀한 지체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아버지 영조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예수님은 어떠하신가? 지존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다. 또 세상의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부르셔서 3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믿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맡기셨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믿고 후일을 맡기셨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자기가 가진 잠재능력 그 이상을 발휘한다고 한다. 우리는 사도들의 삶과 죽음을 영광스런 일로 칭송한다. 내가 태어나고 죽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사느냐는 내 몫이다.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든 간에 그 존재 자체가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이 세대를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라고 한다. ‘신뢰 프로세스’라는 말도 불신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 사회가 서로 믿어주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사랑으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 때 바라던 꿈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는 말씀도 있지 않은가.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는 말씀도 묵상했다. 믿음도, 사랑도 중요하다는 것을 자시 한번 깨달았다. 에수님은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큰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있는 곳 가정, 직장, 사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넘치고, 신뢰 관계 돈독해지기를 기도한다.
/박두원 장로(일산공동체)

박두원 장로(일산공동체)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