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목 목사의 신앙에세이 3
그래서 진정한 자유에 이를 때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그것은 음식과 수면에 관한 욕구부터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간은 욕구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경험한다. 욕구의 추구는 항상 만족과 쾌락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가 때로는 찰나적이고,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성취 결과가 무의미와 공허일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과 투쟁의 노획물로 주어지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더 크고, 본질적인 욕망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삶 속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불만과 실망, 두려움 등을 느끼면서 내면에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욕구를 발견하게 된다. 신앙인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이 사실에 눈뜨기 시작했다면 가장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다. 이것을 진정한 관계 또는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영적 욕망들은 삶의 기본적인 필요만큼이나 강력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근원적인 지향이다. 우리는 이것을 영성이라고 말한다. 결국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주파수를 맞출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때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경험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안식과 근원적인 사랑의 욕망은 이 세상 그 어떤 지성적인 만족, 성적쾌락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강렬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는 이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갈망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앙생활의 중심 과제는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안식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다.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러한 열망은 우리를 종종 비진정성과 위선에 빠지게 만든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면서 실상은 물질적인 소유와 사회적인 성공, 종교적 명성을 추구할 때가 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혼합주의 신앙으로 전락할 수 있다. 분명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그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신들일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이중적이고, 표층적인 태도는 성스럽고 거룩한 모습이라는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기만할 수 있다. 이것이 에스겔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요, 오늘날 한국교회와 나 자신의 자화상일 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로서 나 역시 얼마든지 하나님께 나의 필요와 욕망을 투사하면서 스스로 거짓된 자아에 함몰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 중심의 욕망에 대해 조심스럽게 고찰해본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중심의 심저에서 나온 것인지를 반성하고 있는지, 그것이 정말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며, 하나님의 품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욕구인지 말이다.
가끔씩 현실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곤 한다. 목회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부재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스스로 하나님의 꿈이요, 영적 열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포장이 벗겨지면서 허망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나의 욕망이 끊임없이 변화되고, 또 변형되어야 하리라. 내 안에 하나님만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하게 되는 날까지, 왜곡되고 상처 입은 욕망이 치유되고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진정한 자유에 이를 때까지.
/유현목 목사(오클랜드 온누리교회)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