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선교지 이야기_1. 우즈베키스탄의 종교
재미있는 선교지 이야기
우즈베키스탄의 종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교회가 부흥하고 있다
내가 살던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은 국민의 90%가 무슬림이다. 이슬람교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데 우즈벡도 예외가 아니다. 우즈벡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고 있지는 않아도 국민들 대다수가 무슬림이다. 70%는 수니파, 20%는 시아파다. 이슬람교는 무함마드의 계승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수니파는 ‘할리파(칼리파)’를,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를 무함마드의 계승자로 보고 있다.
우즈벡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무슬림이 된다. 무슬림들은 교회력에 따라 1년에 한 번씩 30일 동안 해 뜨기 전부터 해 지기 전까지 금식을 한다. 물론 물과 술, 담배에 이어 부부생활까지도 금지한다. 그들은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8번 이상 절하며 라마단 금식 기도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슬람 교리를 철저하게 지키며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 종교는 샤머니즘이 혼합된 이슬람교를 추구하고 있다. 세속적인 이슬람을 추구하는 수니파는 사람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시아파 세력의 확산은 차단하고 있다. 과격 단체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막기 위해서였다.
예배도, 선교도 어렵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왕조’가 중앙아시아를 점령하면서 공산혁명이 시작됐다. 무신론적 이데올로기가 뿌리내리면서 무슬림들이 많은 수난을 겪었다. 1991년 소련 정부가 독립하기 전까지 우즈벡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회교국들은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다. 70년 동안 소련에 속한 회교국들은 러시아 정부의 탄압으로 종교에 대한 자유를 표출하지 못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우즈벡에 이슬람교 부흥이 시작됐다. 러시아의 독립은 완전한 자유를 의미했다.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사상과 문화를 부흥시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고국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혼돈의 시대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이 종교였다. 이슬람 사원을 새롭게 건축하고, 종교법을 바꾸는 등 급속도로 변화했다. 1991년 전 구소련 시대에 쓰였던 러시아 말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하루아침에 우즈벡어로 대체됐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또 다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즈벡 정부는 중앙아시아의 모든 종교 운동에 탄압을 가하고, 크리스천들의 교제 장소를 없애고 있는 추세다. 교회 건물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991년부터 많은 선교사들이 우즈벡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우즈벡에 사는 고려인이나 러시아 무종교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선교했다. 무슬림에게는 접근하지 못했다. 현재는 외국 선교사들이 종교 비자를 받는 것도 금지한 상태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국가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우즈벡에 들어간 지 20년이 넘었지만 복음화 비율이 기대보다 현저히 낮다. 그러나 전도 금지법이 성행하는 사회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즈벡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하교회는 부흥하고 있다. 200~300명이 넘는 우즈벡인들이 지하교회에서 신실한 성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이 필요하다.
/ 한 알렉산드라 전도사(온누리M미션)
작성자 김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