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희망노트

목회칼럼

희망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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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썸 타기 좋은 계절이다. 많은 젊은이들은 “겨울이 되기 전에 썸을 타야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썸을 탄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 이것은 사랑, 열정, 정열을 뜻하는데 우리의 행동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예쁜 옷을 입는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
과연, 이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답은 ‘오빠가 나의 오빠가 되리라’는 희망에서부터 시작된다. 썸을 타는 것은 이성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 가운데 열심히 사는 이유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한다. 즉 세상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는 않는다. 세상은 희망찬 내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희망찬 오늘을 알려주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아닌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인생은 평생 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 살며 세상과 계속 썸을 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세상에 이끌려가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세상과 썸을 타던 시기가 있었다. 지난 2004년, 가수의 꿈을 펼치고자 기획사에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길이 보이지 않던 우울한 시절이었다. 내 노력과는 다르게 회의감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 만난 분이 예수님이다. 그 전까지 예수님은 이기적인 분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매주 오는 교회를 나는 살아남기 위해 다녔다. 그 이유는 나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교회에 가서 앉아있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귀에 들린 희망의 메시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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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이 찬양을 듣는데 내 귀에 선명하게 가사가 들렸다. 세상에서 사랑받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됐는데, 예수님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을 계획을 갖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세상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은 조건을 보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섯 살 때 일이다. 동네에 재래식 화장실 하나뿐이었다. 어린 나는 그곳에 올라 설 때마다 무서웠다. “빠지면, 죽을까?” 그런데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화장실에 빠진 내게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기어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나타났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 도망쳤다. 저 멀리 한 사람이 뛰어왔다. 어머니였다. 그 때까지도 무서웠다. 삼형제 중 막내였던 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와락 안아주셨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어머니는 조건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다. 사랑은 성경 안에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희망노트는 바로 이것이다. 세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바쁘게 살아가도록 만든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나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외쳐야 한다.
“반짝이는 그대의 젊음을 향해 지금 희망이 달려갑니다. 희망노트는 당신의 가슴이 희망으로 물드는 시간입니다.”
/ 최성민 목사(허브공동체)

작성자  김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