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의 선배를 만나다_크리스천 시인 윤동주

윤동주 숭실중학 시절(오른쪽이 윤동주)

△윤동주와 친구들(오른쪽이 윤동주 시인),          △(왼쪽이 윤동주 시인)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암흑기 끝자락, 청년 윤동주가 애달픈 나라사랑을 노래했다. 윤동주는 조국의 독립과 자아성찰에 힘쓴 시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막막한 현실과 슬픈 시대상을 글로 표현했다. 시인 윤동주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는 윤동주 시인 서거 70주년이었다. 부암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젊은이들이 다시 찾는 장소가 됐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개봉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 일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해처럼 빛나라는 의미에서 ‘해환(海煥)’이었다.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룡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난 그는 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집안은 당시 명동촌에서 손꼽히는 유지였다. 할아버지 윤하현은 소지주였고, 명동에 세워진 교회 장로였다.
당시 만주 북간도 일대는 항일감정이 대단한 지역이었다. 일본을 일본이라 부르지 않고 ‘왈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윤동주도 지역적인 영향을 받고 자라서인지 항일감정이 컸다. 18세에 일본순사들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민족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는 연희전문학교 문과(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 진학했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 신사참배와 삶에 대한 고뇌가 그를 괴롭게 했다. 암울한 조국 현실을 생각하면서 별 헤는 밤, 서시, 자화상, 참회록 등을 썼다.

 

시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그의 시는 시간의 흐름과 인과관계에 따른 구성이 특징이다. 시 ‘십자가’에는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짊어지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라는 표현도 있는데 그것은 높은 첨탑만큼 광복의 길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릴 적부터 그는 기독교적 생활이 익숙했다. 가정예배를 드렸고, 주일이면 교회에 갔다. 대학까지 기독교 학교를 다니면서 매주 몇 번씩 예배를 드렸다. 청년 시절 반기독교적 사회 현실과 맞부딪치면서 인생관에 심한 도전을 받고, 좌절하기도 했다. 그에게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표상이 아니었다. 예수가, 예수의 제자들이 스스로 선택한 고난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사참배와 전쟁을 강요하던 당시 교회들은 아무런 희망의 종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가 느낀 고독과 괴로움, 절망이 시에 반영되어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괴로움과 십자가에 대한 숭고한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길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다.

 

크리스천 독립운동가 윤동주와 송몽규

 

윤동주를 말하면서 송몽규를 빼놓을 수 없다. 송몽규는 윤동주와 고종사촌 지간으로 한 집에서 살았다. 송몽규는 1917년 9월 28일에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겸 수필가로 활동한 인물로 알려졌다. 송몽규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윤동주는 내성적이고 섬세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1943년 7월 10일 송몽규가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됐고, 나흘 뒤 윤동주도 같은 혐의로 붙잡혔다. 그 둘은 같은 형무소에 잡혀있는 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수사관에 의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윤동주는 원고에 문제가 있고, 송몽규는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그룹 사건을 책동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후,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됐다.
광복을 몇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절명했고, 며칠 뒤 3월 7일 송몽규는 눈을 감지 못한 채 사망했다. 후쿠오카 화장장에서 재가 되어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다. 윤동주의 장례식에서는 자화상, 새로운 길이 낭독됐고, 송몽규는 명동 장재촌 뒷산에 묻혔다.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