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내가 평생 믿은 종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내가 평생 믿은 종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이 만든 기준과 상식이 있어서 제약이 많고, 사회적 통념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꿈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를 거부해야 하는 것도 있고, 싸워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주시는 그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어릴 적 종교를 바꾸면 귀신들이 보복할까 두려워 부모님의 종교 7~8개를 믿었다고 한다. 우리는 귀신의 보복과 괴롭힘보다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귀신은 겁내면 더 신나하고 좋아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귀신은 타락한 천사다. 귀신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 대적하고 꾸짖어야 할 대상이다. 기독교인들은 귀신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어느 날 70세 되는 남자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어릴 때는 교회도 스스로 나갔는데 지금은 안 다녀요”라고 하셨다. 전도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이는 아기가 태어나기는 했는데 젖을 먹지 못하고 우유를 먹지 못해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와 같다. 믿는 형제들과 부모 같은 역할을 해준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 땅을 찾아온 나그네들에게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큰일이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이 만든 기준과 상식이 있어서 제약이 많고, 사회적 통념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꿈꾸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변화를 거부해야 하는 것도 있고, 싸워야 하는 것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종종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의 뜻은 예수를 믿었으니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말한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소통하며(관계) 살도록 창조되었다(창 1:27).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기쁨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했다. 인간들의 고뇌와 문제해결을 위해 세상의 헛된 것을 숭배하는 문화체계가 생겨났고 그것이 종교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기존의 종교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수님께서 직접 오신 이유도 하나님과 사람의 유대관계를 원래대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천국을 비유하시며 어떤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저마다 이유를 대며 참석하기를 싫어했다고 하셨다(마 22:2). 잔치 주인공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마련된 잔치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지도 못한 예수님을 어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이를 다시 말하면 “너는 나와 어떤 관계니?”라고 질문하신 것이다. 돈이나 성공여부, 능력을 묻지 않으셨다. 교회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예수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와야지 일상적인 마음으로는 유지할 수가 없다. 사랑을 지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먼저는 없다.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사랑을 지속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 창조될 때 맺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참 자유와 참 사랑을 누릴 수 있고, 참 신앙을 가질 수 있다.
/ 백성희 권사(경기A공동체)
어느 날 70세 되는 남자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어릴 때는 교회도 스스로 나갔는데 지금은 안 다녀요”라고 하셨다. 전도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이는 아기가 태어나기는 했는데 젖을 먹지 못하고 우유를 먹지 못해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와 같다. 믿는 형제들과 부모 같은 역할을 해준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 땅을 찾아온 나그네들에게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큰일이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이 만든 기준과 상식이 있어서 제약이 많고, 사회적 통념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꿈꾸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변화를 거부해야 하는 것도 있고, 싸워야 하는 것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종종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의 뜻은 예수를 믿었으니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말한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소통하며(관계) 살도록 창조되었다(창 1:27).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기쁨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했다. 인간들의 고뇌와 문제해결을 위해 세상의 헛된 것을 숭배하는 문화체계가 생겨났고 그것이 종교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기존의 종교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수님께서 직접 오신 이유도 하나님과 사람의 유대관계를 원래대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천국을 비유하시며 어떤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저마다 이유를 대며 참석하기를 싫어했다고 하셨다(마 22:2). 잔치 주인공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마련된 잔치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지도 못한 예수님을 어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이를 다시 말하면 “너는 나와 어떤 관계니?”라고 질문하신 것이다. 돈이나 성공여부, 능력을 묻지 않으셨다. 교회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예수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와야지 일상적인 마음으로는 유지할 수가 없다. 사랑을 지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먼저는 없다.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사랑을 지속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 창조될 때 맺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참 자유와 참 사랑을 누릴 수 있고, 참 신앙을 가질 수 있다.
/ 백성희 권사(경기A공동체)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