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목사 <팡세>
책 읽어주는 목사
인간의 언어로 말하다
<팡세>
블레즈 파스칼 저 / 민음사 / 11,000원
성경은 하나님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을 말한다. 이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인간은 누구인지, 인간은 어떤 일을 했는지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동시에 인간을 만난다. 이러한 성경의 특징을 지닌 책 이 있다. 파스칼의 <팡세>다.
<팡세>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과 하나님 있는 인간의 복됨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은 타락한 인간을 다룬다. 어떤 면에서 인간을 타락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이 타락했음을 말해주는 표징이 무엇인가?
“어떤 왕이 전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고도 자기만은 이것을 모를 수도 있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는 유익하지만 말하는 사람에게는 해롭다. 미움을 사기 때문에. 그런데 왕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왕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왕의 이익을 도모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 안에서나 타인에게서나 위장이고 기만이고 위선일 뿐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발전에 의해 완성되는 모든 것은 발전에 의해 망한다. 약했던 모든 것은 결코 절대적으로 강해질 수 없다. 그는 성장했고, 변했다고 말해 봤자 소용없다.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인간은 발전적이다. 인간은 멸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파스칼이 관찰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고, 그 인간이 지니는 비참이다. 어느 누구도 이 비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파스칼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에서 하나님 있는 인간의 복됨으로 나아간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영혼에게, 하나님이 그의 유일한 선이고, 그의 모든 평안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의 유일한 기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하나님이다. 영혼을 속박하는 자애심과 타락은 하나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하나님은 영혼을 타락시키는 자애심의 뿌리를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것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과 분리됨으로써 타락과 비참 속에 떨어진 인간은 지난날의 위대와 영광에 복귀하기를 갈망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꿈꾼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에게는 이것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개입이 있게 되며, 비로소 위에서 아래로 임하는 은혜와 구속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렇게 자연으로서의 인간에서 은혜로서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본 저서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이것은 저자가 신적 언어를 인간적 언어로 풀이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인간의 자연적 위치에서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간다. 저자의 궁극적 목적지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 여정에서 인간의 편에 서서 끝까지 인간과 동행하기를 택하였다. 이 여정의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저자는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기에 힘쓴다. 구원하는 주체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주체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본 저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언어,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메시지이며, 공감이 넘치는 메시지다. 나는 <팡세>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한다. 인간 절망의 소리를 대변하지 않고서 인간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화수 목사(동작공동체)
<팡세>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과 하나님 있는 인간의 복됨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은 타락한 인간을 다룬다. 어떤 면에서 인간을 타락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이 타락했음을 말해주는 표징이 무엇인가?
“어떤 왕이 전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고도 자기만은 이것을 모를 수도 있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는 유익하지만 말하는 사람에게는 해롭다. 미움을 사기 때문에. 그런데 왕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왕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왕의 이익을 도모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 안에서나 타인에게서나 위장이고 기만이고 위선일 뿐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발전에 의해 완성되는 모든 것은 발전에 의해 망한다. 약했던 모든 것은 결코 절대적으로 강해질 수 없다. 그는 성장했고, 변했다고 말해 봤자 소용없다.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인간은 발전적이다. 인간은 멸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파스칼이 관찰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고, 그 인간이 지니는 비참이다. 어느 누구도 이 비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파스칼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에서 하나님 있는 인간의 복됨으로 나아간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영혼에게, 하나님이 그의 유일한 선이고, 그의 모든 평안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의 유일한 기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하나님이다. 영혼을 속박하는 자애심과 타락은 하나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하나님은 영혼을 타락시키는 자애심의 뿌리를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것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과 분리됨으로써 타락과 비참 속에 떨어진 인간은 지난날의 위대와 영광에 복귀하기를 갈망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꿈꾼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에게는 이것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개입이 있게 되며, 비로소 위에서 아래로 임하는 은혜와 구속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렇게 자연으로서의 인간에서 은혜로서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본 저서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이것은 저자가 신적 언어를 인간적 언어로 풀이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인간의 자연적 위치에서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간다. 저자의 궁극적 목적지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 여정에서 인간의 편에 서서 끝까지 인간과 동행하기를 택하였다. 이 여정의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저자는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기에 힘쓴다. 구원하는 주체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주체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본 저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언어,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메시지이며, 공감이 넘치는 메시지다. 나는 <팡세>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한다. 인간 절망의 소리를 대변하지 않고서 인간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화수 목사(동작공동체)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