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책 읽어주는 목사 <꽃삽>

책 읽어주는 목사
 
마음의 정원
<꽃삽>
이해인 저 / 샘터사 / 13,000원 
 
재작년 초여름 A형 간염으로 병상에 누워있을 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에세이 시집<꽃삽>을 입원기간 틈틈이 읽었다. 한 편 한 편의 시(詩)와 글이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에 적잖이 큰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그만 꽃삽 하나 들고 작은 꽃밭을 손질하는 것을 자신의 삶에 찾아온 ‘하루’라는 정원을 손질하는 것이라고 한 이해인 수녀는 작고 앙증맞은 이 꽃삽이야말로 ‘하루’라는 꽃밭에 꽃씨 하나 틔울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사랑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그 꽃삽에 의해 정갈하게 다듬어진 정원의 이모저모가 독자의 마음도 요모조모 보듬는 이 책은 총 여섯 개의 꽃씨를 품고 있다. 
#창을 사랑하며 #봄이 오면 나는 #그 사람의 향기 작지만 #좋은 몫을 책을 읽는 기쁨 #십대들을 위하여… 이미 문화현상으로 진화한 SNS 검색용 메타데이터인 ‘해시태그(hashtag)’로도 훌륭한 조합을 이루고 있는 이 꽃씨들은 바지런한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하늘 소망에 시선이 닿아 있는 작가의 면모를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올 여름,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부산 앞바다를 잊을 수 없다. 드높은 파란 하늘과 자유로운 흰 갈매기의 조화, 드넓은 백사장과 세차게 밀려드는 파도…. 아파트에 갇혀있던 아이들에게 거침없는 대자연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꽃삽>에 수록된 시 <바닷가에서>는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사는 작가의 일상이다. 복도에서, 식당에서, 옥상에서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행복을 항상 새롭게 감사하며 푸른 바다를 마음에 들여 놓는 작가의 여유로움이다.
  
오늘은/맨발로/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철석이는 파도 소리가/한 번은 하느님의 통곡으로/한번은 당신의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삶이 피곤하고/기댈 데가 없는 섬이라고/우리가 한 번씩 푸념할 적마다/쓸쓸함의 해초도/더 깊이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며 하는 말/감당 못할 열정으로/삶을 끌어안아보십시오/썰물이 나가면서 하는 말/놓아버릴 욕심들은/미루지 말고 버리십시오//
바다가 모래 위에 엎질러놓은/많은 말을 다 전할 순 없어도/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을/당신께 선물로 드릴게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슬픔이 없는 바닷가에서/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춤추는 물새로 만나는 꿈을 꾸며/큰 바다를 번쩍 들고 왔습니다//
 
오감(五感)으로 바다를 체험하는 작가가 부럽다. 사각거리는 바닷가 모래알을 맨발로 느끼는 촉각(觸覺)과 파도소리를 누군가의 울음소리로 치환시키는 청각(聽覺)은 이채롭다. 드나드는 썰물을 바라보며 열정과 욕심을 넘나드는 나를 보게 하는 시각(視覺)은 이젠 차라리 경이롭다. 짭조름한 바닷물의 미각(味覺)과 비릿한 바닷가의 후각(嗅覺)은 독자에게 상상으로 맡겨 놓은 채 마음만 먹으면 바로 뛰어나갈 수 있는 작가의 삶이 부럽다.   
아무의 눈에도 잘 안 띄는 봄까치꽃을 라일락과 동등하게 만들고, 요요한 동백꽃도 민들레와 조화를 이루게 하며, 들꽃이 피어나는 숨결에도 귀 기울이는 기쁨과 보잘것없어 뵈는 사람들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놀라움이 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 바다에서든, 산에서든, 일상에서든 우리는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생각(生覺)해야 한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꽃삽은 우리의 생각을 다듬고 뒤집고 옮기는 데 유용하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정원이 있다. 오감으로 넘쳐나는 마음의 정원이 있다. 그 정원에는 꽃들이 피어나며 새들이 노래한다. 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화과나무는 푸른 열매를 맺었고, 꽃을 피운 포도나무는 향기를 퍼뜨린다. 작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곧잘 꽃씨 선물을 한다. 선물을 받았든 바람 타고 날아들어 온 홀씨든 우리네 마음 속 정원에는 씨앗이 내려앉는다. 이미 우리에겐 좋은 씨앗이 정원에 심겨져 있지 않은가. 다만 우리들의 꽃삽으로 이 좋은 씨앗이 뿌리 내리기를, 잎이 나고 꽃이 피어나기를, 열매 맺기를 참고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아가서에도 등장하는 포도원을 망치려는 작은 여우들(아 2:15)이 지금도 내 마음의 정원을 노리고 있으니 말이다.
/ 곽상학 목사(온누리교회 협동목사)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