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헌금을 꼭 해야 하나요? 헌금 내는 것이 부담 돼요”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헌금을 꼭 해야 하나요? 헌금 내는 것이 부담 돼요”
 
“성경에 나타난 올바른 헌금은 넘치는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자신의 삶과 신앙고백을 드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빚을 내가면서 혹은 마음에 심적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헌금생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부담이 된다면 성령 안에서 더 기도하며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기쁜 헌신과 자원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경건한 훈련을 통해 길들여져야 합니다. 평소 작은 것부터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더 큰 것을 주셨을 때 부담 없이 헌금생활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나이가 지긋한 성도님께서 세례간증을 하셨는데 “이제 나이 먹고 늙어 세례 받게 되어 너무 감개무량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며 이제야 교회를 나오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 어르신은 아주 어렸을 때 친구 따라 무심코 시골교회에 나갔었는데 예배 후 분반공부가 시작되자 갑자기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날따라 헌금교육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는지 “혹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안 가지고 온 사람 있으면 지금 손 높이 들어보세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교회에 처음 나왔던 그 어르신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헌금이 없음을 알고 손을 들었다. 그때 교회선생님이 “집에 가서 헌금 가져오세요”라고 말했고, 그 일로 어린나이에 큰 상처와 수치심을 느낀 성도님은 다시는 교회를 나간 적이 없다고 하셨다. 도대체 헌금이 무엇이기에 어린 영혼을 실족하게 만들고,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버리게 만들었던 것일까? 
목회를 하다보면 교회에 처음 나온 새신자나 기신자할 것 없이 십일조와 헌금문제를 가지고 진솔한 상담을 해올 때가 많다. “헌금을 매주 주일 꼭 해야 하나요?”, “주재원으로 잠깐 해외나 지방에 있어 어쩔 수 없이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데 본교회에 십일조하면 되지 않나요?”, “지금 제 형편이 너무 어려운데 헌금생활이 너무 부담이 됩니다.”, “예전에 헌금을 약정했는데 빚을 내서라도 드려야 하나요?” 등의 질문을 받는다. 어떤 분은 교회가 헌금을 의무적으로 강요해서 신앙생활에 심한 피로를 느낀 나머지 아예 헌금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교회에 헌금에 대한 교육부재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경은 올바른 헌금생활에 대해 어떻게 교훈하고 있을까. 먼저 구약을 보면 신명기 14장 22~29절에서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띈다. 시편 96편 8절에서도 구약의 성도들은 헌금 내는 것을 무척 즐거워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언급할 때 히브리어로 ‘십의 일’은 ‘첫 것’, ‘장자’, ‘맏물’, ‘대표(모든 것)’를 의미한다. 그들이 바친 십일조나 헌금은 단지 일부분만 바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 건강, 재물 전부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전제로 바친다는 뜻이다. 
신약에서도 헌금에 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마가복음 12장 41~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헌금과 과부의 두렙돈을 보시며 헌금의 양이나 액수를 결코 축복의 개념 정도로 규정짓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고린도후서 8~9장에서 왜 부유한 고린도교회보다 가난한 마게도냐교회가 연보를 풍성하게 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헌금을 세금이나 의무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드렸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가난한 중에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날마다 감사하였다. 바울은 마게도냐교회의 헌금생활이 하나님의 선한 일에 동역자가 되는 것임을 역설한다.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게 하는데 마게도냐교회의 헌금이 귀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성경에 나타난 올바른 헌금은 넘치는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자신의 삶과 신앙고백을 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빚을 내가면서 혹은 마음에 심적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헌금생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부담이 된다면 성령 안에서 더 기도하며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반대로 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나쁜 것이니 이에 대해 침묵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기독교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바치는 기쁜 헌신과 자원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경건한 훈련을 통해 길들여져야 한다. 평소 작은 것부터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더 큰 것을 주셨을 때 부담 없이 헌금생활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만원을 벌 때 1만원은 십일조로 쉽게 낸다. 그러나 100만원을 벌 때 10만원을 십일조로 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다. 1억을 벌 때 1천만 원을 십일조로 내는 것은 몇 배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들은 헌금생활 교육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그만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임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 김상수 목사(대전 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