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칼럼 - 예배자, 지도자, 전도자 되기를
권사칼럼
예배자, 지도자, 전도자 되기를
스리랑카 선교사로 다녀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스리랑카 국제학교 트리홈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그날들을 회상하며 글을 쓴다. 나는 2015년 1월 15일 새벽 4시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습하고 더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손바람으로 쉽게 물러가지 않는 더위를 식히며 국제학교에 도착했다. 재잘재잘 떠들며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맡게 된 트리홈 아이들이었다.
트리홈에 처음 방문하던 날 7명의 아이들이 내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다. 그 아이들에게는 축구가 전부였다. 그 아이들의 모습은 초라하고,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기쁨이 하나도 없었고, 사람만 보면 피하거나 숨어버렸다. 과연 내가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답을 내렸다. 그냥 이 아이들과 함께 오래 있어주면서 부모와 같은 사랑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2년은 사역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아이들의 애달픈 사정과 상처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 트리홈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 없는 고아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들은 학교에서 물건이 하나라도 없어졌다 싶으면 바로 타깃이 되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매일 밤 눈물로 기도하고, 수업이 끝나면 안아주고, 작은 일에도 칭찬해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믿고,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곧장 트리홈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각자 할일을 하고 공부했다.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될 무렵 2년 동안의 사역을 종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리랑카에 있는 그 아이들도 나를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민 끝에 4개월 만에 다시 스리랑카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2017년 4월 28일 다시 돌아온 스리랑카는 공기부터 반가웠다. 새벽 4시 모두가 잘 시간에 아이들이 장영미 선생님과 함께 공항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얼마나 감동이 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온 스리랑카에서 아이들과 또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의 삶에 열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꿈이 생겼다. 유명한 미용사가 되어 예수님을 전하는 귀한 사역을 하고 싶다는 아이, 목회자가 되어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싶다는 아이, 의사가 되어 아픈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고 싶다는 아이, 자신의 기술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아이 등 각자의 꿈을 꾸고 있다.
이제 그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가지고 국제학교를 졸업했다. 아이들의 졸업과 함께 사역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앞으로 펼쳐질 아이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7명의 아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순종하는 예배자, 스리랑카의 지도자, 복음의 전도자 되기를 축복한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하나님이 사랑의 손으로 그 아이들의 인생을 붙들어주시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 장영미 권사(중종로공동체)
트리홈에 처음 방문하던 날 7명의 아이들이 내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다. 그 아이들에게는 축구가 전부였다. 그 아이들의 모습은 초라하고,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기쁨이 하나도 없었고, 사람만 보면 피하거나 숨어버렸다. 과연 내가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답을 내렸다. 그냥 이 아이들과 함께 오래 있어주면서 부모와 같은 사랑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2년은 사역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아이들의 애달픈 사정과 상처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 트리홈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 없는 고아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들은 학교에서 물건이 하나라도 없어졌다 싶으면 바로 타깃이 되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해 매일 밤 눈물로 기도하고, 수업이 끝나면 안아주고, 작은 일에도 칭찬해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믿고,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곧장 트리홈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각자 할일을 하고 공부했다.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될 무렵 2년 동안의 사역을 종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리랑카에 있는 그 아이들도 나를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민 끝에 4개월 만에 다시 스리랑카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2017년 4월 28일 다시 돌아온 스리랑카는 공기부터 반가웠다. 새벽 4시 모두가 잘 시간에 아이들이 장영미 선생님과 함께 공항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얼마나 감동이 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온 스리랑카에서 아이들과 또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의 삶에 열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꿈이 생겼다. 유명한 미용사가 되어 예수님을 전하는 귀한 사역을 하고 싶다는 아이, 목회자가 되어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싶다는 아이, 의사가 되어 아픈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고 싶다는 아이, 자신의 기술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아이 등 각자의 꿈을 꾸고 있다.
이제 그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가지고 국제학교를 졸업했다. 아이들의 졸업과 함께 사역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앞으로 펼쳐질 아이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7명의 아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순종하는 예배자, 스리랑카의 지도자, 복음의 전도자 되기를 축복한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하나님이 사랑의 손으로 그 아이들의 인생을 붙들어주시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 장영미 권사(중종로공동체)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