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건강한 내면 돌봄의 기독교적 원리
신앙에세이
건강한 내면 돌봄의 기독교적 원리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는 그 어떤 시대보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많은 한국 교회들이 정신 돌봄과 관련된 치유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적용하고 있다. 장점도 있지만 다양하게 예상되는 걱정거리도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 교수 필립 리프(Philip Rieff,1966)는 기독교가 ‘자가 치료적 체계(self-help therapy)’로 변질되어 갈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강조되고, 구원은 심리적인 건강으로 축소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이기 보다 심리치료사로 소개되고, 교회는 복음을 위해 심리학을 하나의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다(권수영, 2007).
물론 현재 한국 교회는 복음의 여러 기능 중에서 성도들의 정신건강에 관한 복된 소식에 관심을 기울일 시점에 처해 있다. 그 결과 교회는 치유와 회복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전통적 신앙과 성경에 대한 훈련만큼 요청받고 있다. 나는 이러한 한국 사회와 교회의 현실에서 정신건강을 돌보고자 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어떤 관점과 자세로 정신건강과 감정을 돌봐야 할지에 대해서 몇 가지 나누고 싶다.
첫째, 기독교상담 혹은 기독교 내적치유라는 말의 뜻은 종교적 경전, 예식, 종교언어를 사용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의 의미는 특성과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용서의 정신을 가진 전문가의 자세를 일컫는 것이지 종교적 상담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둘째, 목회자는 자신의 교회 성도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내면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고 매주 만나게 되면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치료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관계를 ‘오염된 관계’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상담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목회자는 가볍게 목회적 대화를 통하여 조언을 주고, 더 깊은 이야기는 전문상담자에게 의뢰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목회자가 상담전문가라면 외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상담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도 역시 목회자에게 깊은 고민을 장기간 상담 받고자 한다면 전문가를 찾기를 권한다.
셋째, 심리나 상담 혹은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목회자 혹은 교회리더가 상담이나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것은 의학공부와 임상실습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진료를 보고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넷째,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프로그램에서 준비되지 않는 상태로 자신의 내면을 오픈하거나 깊은 비밀을 고백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나는 종종 치유프로그램에서 오래된 내면의 문제들을 털어놓고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본다. 어떤 교회는 무조건 상처와 죄악을 공적인 회중 앞에서 토로하게 만든다. 이것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정신적, 종교적 학대에 해당한다. 상처는 안전한 공간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준비된 만큼 다루어져야 치료적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절대로 내담자로 하여금 억지로 그들의 마음을 개방시키지 않는다. 오직 동반자로서 내담자들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옆에서 지켜보며 따라가 줄 뿐이다. 준비되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면의 상처를 개방하면 재트라우마를 입게 된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는 분이시다.
다섯째, 과도한 상담 비용 혹은 세미나 비용을 요구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기독교적이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비용이 비싸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일 일반 전문가들이 받는 비용보다 과도한 비용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치료적 행위를 한다면 나는 감히 그들이 거짓선지자들일 뿐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마음 치유와 돌봄은 건강한 신앙생활과 함께 가야 한다. 부디 모든 성도들이 건강한 영적 돌봄의 원리로 자신의 삶을 돌보기를 바란다.
/ 오은규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상담학 박사)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는 그 어떤 시대보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많은 한국 교회들이 정신 돌봄과 관련된 치유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적용하고 있다. 장점도 있지만 다양하게 예상되는 걱정거리도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 교수 필립 리프(Philip Rieff,1966)는 기독교가 ‘자가 치료적 체계(self-help therapy)’로 변질되어 갈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강조되고, 구원은 심리적인 건강으로 축소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이기 보다 심리치료사로 소개되고, 교회는 복음을 위해 심리학을 하나의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다(권수영, 2007).
물론 현재 한국 교회는 복음의 여러 기능 중에서 성도들의 정신건강에 관한 복된 소식에 관심을 기울일 시점에 처해 있다. 그 결과 교회는 치유와 회복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전통적 신앙과 성경에 대한 훈련만큼 요청받고 있다. 나는 이러한 한국 사회와 교회의 현실에서 정신건강을 돌보고자 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어떤 관점과 자세로 정신건강과 감정을 돌봐야 할지에 대해서 몇 가지 나누고 싶다.
첫째, 기독교상담 혹은 기독교 내적치유라는 말의 뜻은 종교적 경전, 예식, 종교언어를 사용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의 의미는 특성과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용서의 정신을 가진 전문가의 자세를 일컫는 것이지 종교적 상담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둘째, 목회자는 자신의 교회 성도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내면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고 매주 만나게 되면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치료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관계를 ‘오염된 관계’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상담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목회자는 가볍게 목회적 대화를 통하여 조언을 주고, 더 깊은 이야기는 전문상담자에게 의뢰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목회자가 상담전문가라면 외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상담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도 역시 목회자에게 깊은 고민을 장기간 상담 받고자 한다면 전문가를 찾기를 권한다.
셋째, 심리나 상담 혹은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목회자 혹은 교회리더가 상담이나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것은 의학공부와 임상실습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진료를 보고 수술실에서 수술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넷째,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프로그램에서 준비되지 않는 상태로 자신의 내면을 오픈하거나 깊은 비밀을 고백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나는 종종 치유프로그램에서 오래된 내면의 문제들을 털어놓고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본다. 어떤 교회는 무조건 상처와 죄악을 공적인 회중 앞에서 토로하게 만든다. 이것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정신적, 종교적 학대에 해당한다. 상처는 안전한 공간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준비된 만큼 다루어져야 치료적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절대로 내담자로 하여금 억지로 그들의 마음을 개방시키지 않는다. 오직 동반자로서 내담자들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옆에서 지켜보며 따라가 줄 뿐이다. 준비되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면의 상처를 개방하면 재트라우마를 입게 된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는 분이시다.
다섯째, 과도한 상담 비용 혹은 세미나 비용을 요구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기독교적이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비용이 비싸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일 일반 전문가들이 받는 비용보다 과도한 비용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치료적 행위를 한다면 나는 감히 그들이 거짓선지자들일 뿐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마음 치유와 돌봄은 건강한 신앙생활과 함께 가야 한다. 부디 모든 성도들이 건강한 영적 돌봄의 원리로 자신의 삶을 돌보기를 바란다.
/ 오은규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상담학 박사)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