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

신앙에세이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언약적인 관계가 무엇일까?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마지막 설교문이다.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신명기는 유언 같은 중요한 메시지다.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권면했다면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맞지 않다. 예전에는 한 회사에 뼈를 묻었다면 지금은 이직을 자주하는 시대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사회가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다는 증거다. 우리가 일어나서 잘 때까지 보는 광고가 2,000~3,000개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의 광고들은 우리의 심리에 맞춰져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소비심리를 부축여서 스스로가 왕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내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약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신명기 29장 12~13절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모두가 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너와 함께 맺는 맹세에 참여해 네게 맹세하셨던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셨던 대로 그분께서 오늘 너를 세워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분은 네 하나님이 되시려는 것이다.”
이 구절에는 사랑의 언어가 듬뿍 담겨 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고, 그냥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언약은 사랑과 율법의 기묘한 조합이다. 언약이 감동적인 이유는 개인적인 관계보다 더욱 친밀한 것이고, 법적인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상호관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보다 중요하고, 이 관계가 나의 필요 보다 중요하며, 이 관계를 위해서 내가 희생 하겠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언약의 딜레마가 있다. 우리가 만약 언약을 지키지 못하면 위반에 대한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만 하시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죄에 눈을 감아 버리시면 정의로운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정의로우시면서 동시에 신실하실까? 그 해답은 창세기 15장에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 아브라함이 제사 사이로 들어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대신해 찢은 고기 사이로 들어가셨다(창 15:17). 이것은 우리가 언약을 어겨도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겠다는 다짐이다. 우리를 위해서 대신 저주를 받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무에 달린 사람마다 저주를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갈 3:13).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조건을 지키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절대적 사랑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정의로우신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 백인규 목사(Point5공동체)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