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요즘 전도, 삶으로 전해야지 말로 전하면 역효과 아닌가요?"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요즘 전도, 삶으로 전해야지 말로 전하면 역효과 아닌가요?”
“전도에 대한 부담은 있는데 현실적으로 갈등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정서 때문에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역시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라고 말씀합니다. 선한 행실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고, 말로도 증거 해야 합니다. 전하는 방법과 태도, 관계의 문제이지 복음은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이고, 기다리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 명언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충정에서 나온 이순신 장군의 유언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과 예수 믿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복음을 숨겨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기쁜 소식이 전해져야 복음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 노방전도가 혐오를 주는 모습으로 비춰져 복음 전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입을 닫아서는 안 된다. 삶으로 복음을 전하자는 마음 역시 귀하지만 우리의 삶은 복음을 전할만큼 완벽하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의 삶이 복음이 될 만큼 변화되도록 기다리다 평생 한 사람도 전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들으며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는가? 성경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부어 주셨고”(행 1:8),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막상 말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고, 전도의 설렘보다 부담감과 두려움이 더 큰 것이 우리의 딜레마다. 그것은 전도의 기초체력과 전도근육이 없기 때문이다. 기초체력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 지식이 아니라 삶에서 그분을 경험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확신이 전도의 기초체력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도 전도를 하려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전도근육이 없기 때문이다. 몸의 근육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운동을 해야 생기듯이 전도도 자꾸 해봐야 전도근육이 생긴다.
전도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세상의 중력이 끌어당기기에 믿는 우리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날아오르기가 쉽지 않다. 말씀이 삶에서 실제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에게 말해야 한다.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선포할 때 말씀근육이 생긴다. 말씀근육이 곧 전도근육이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을 선포할 때 확신과 기쁨이 넘친다. 자신도 변화 시키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어 순종함으로 여호수아가 그 땅을 차지했다. 나도 전도하기 전에 말씀을 내 입에 두기로 했다. 말씀을 마음에만 두지 않고 말로 선포했더니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경험했다. 손주들과 함께 암송했더니 더욱 재미있었고, 자신감이 붙어 두렵지 않았다. 놀랍게도 묵상한 말씀이 전도대상자의 상황에 적용되어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기도 했다. 바로 그럴 때 전도는 부담이 아니라 신나는 것이 된다.
또한 전도는 관계형성이 중요하다. 서로 간섭하지 말고 취향대로 자유롭게 살자고 하는 시대이지만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눌려있고 매여 있다.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진심으로 다가가 매인 줄을 끊고 자유롭게 하는 복음의 나팔이 되자. 혼돈과 무질서가 세상을 덮고 있어서 희망이 없어 보여도 오직 세상의 희망과 대안은 예수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삶으로 그들을 섬기며 반드시 말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바람이 불어 골짜기에 누운 마른 뼈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게 되리라.
/ 박인숙 권사(신용산공동체, <전도여왕의 전도 레시피> 저자)
막상 말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고, 전도의 설렘보다 부담감과 두려움이 더 큰 것이 우리의 딜레마다. 그것은 전도의 기초체력과 전도근육이 없기 때문이다. 기초체력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 지식이 아니라 삶에서 그분을 경험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확신이 전도의 기초체력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도 전도를 하려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전도근육이 없기 때문이다. 몸의 근육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운동을 해야 생기듯이 전도도 자꾸 해봐야 전도근육이 생긴다.
전도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세상의 중력이 끌어당기기에 믿는 우리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날아오르기가 쉽지 않다. 말씀이 삶에서 실제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에게 말해야 한다.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선포할 때 말씀근육이 생긴다. 말씀근육이 곧 전도근육이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을 선포할 때 확신과 기쁨이 넘친다. 자신도 변화 시키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어 순종함으로 여호수아가 그 땅을 차지했다. 나도 전도하기 전에 말씀을 내 입에 두기로 했다. 말씀을 마음에만 두지 않고 말로 선포했더니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경험했다. 손주들과 함께 암송했더니 더욱 재미있었고, 자신감이 붙어 두렵지 않았다. 놀랍게도 묵상한 말씀이 전도대상자의 상황에 적용되어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기도 했다. 바로 그럴 때 전도는 부담이 아니라 신나는 것이 된다.
또한 전도는 관계형성이 중요하다. 서로 간섭하지 말고 취향대로 자유롭게 살자고 하는 시대이지만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눌려있고 매여 있다.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진심으로 다가가 매인 줄을 끊고 자유롭게 하는 복음의 나팔이 되자. 혼돈과 무질서가 세상을 덮고 있어서 희망이 없어 보여도 오직 세상의 희망과 대안은 예수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삶으로 그들을 섬기며 반드시 말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바람이 불어 골짜기에 누운 마른 뼈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게 되리라.
/ 박인숙 권사(신용산공동체, <전도여왕의 전도 레시피> 저자)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