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책 읽어주는 목사 <페스트>

책 읽어주는 목사
 
페스트의 시대

<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 / 민음사 / 13,000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떠들썩한 요즘, 나는 서점에서 책 한권을 골랐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다. 제목 자체가 주는 무게감에 현실을 더 느껴보려고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집은 것 같다.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북아프리카 해안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페스트가 발생한다. 도시는 폐쇄되어 서서히 죽음의 도시로 바뀌고 사람들은 갑작스레 유배지에 갇혀버린 신세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이 책의 저자 카뮈는 천재 소설가답게 닫혀버린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세상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부조리를 애써 외면하고 철저하게 혼자만의 삶을 사는 사람들, 페스트 상황에 가학적 쾌락을 느끼며 그것을 인생이라 부르는 사람들, 심지어 어떤 범죄자는 치안이 소홀해진 틈을 타서 세상을 자유롭게 즐기기까지 한다. 등장인물 중에  신앙의 힘으로 역병을 극복하려는 신부 파늘루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절망 속에서 기도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불행을 겪어 마땅한 사람들입니다”라고 외친다. 사람들은 의외의 발언에 놀라 신부를 쳐다본다. 신부는 말을 이어간다.
“오늘 페스트가 창궐하게 된 이유는 반성할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들은 악과 타협했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불안과 공포에 떨며 위로의 메시지를 기대했던 청중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 신의 구원과 기독교적 희망을 이때만큼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흐느낀다. 페스트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대에 교회가 시대에 편승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성과 전염병의 영적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소설에는 또 다른 인상적인 인물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리유 박사와 함께 페스트 퇴치에 앞장섰던 서기관 ‘타루’다. 그는 과거 불쌍한 범죄자를 구원하지 못한 검사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아 허무주의에 빠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리유 박사와 함께 열심히 일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건강한 사람으로 페스트와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실상 내가 페스트 환자였다는 것을. 내가 환자임을 알고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병을 전염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겸손이라는 것을.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우리는 전염병의 부실대처에 대해 비난하고, 행여나 자신이 감염될까봐 노심초사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병을 이겨내고 혼란 속에서 평안을 누리려면 내가 혹시 남을 감염시키는 전파자가 아닐까 조심하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그는 계속 말한다. “나는 마음의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리유 박사가 되묻는다. “신은 믿지 않으면서?” 타루는 “그것이 자기의 고민”이라고 짧게 답한다. 나중에 타루는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게 된다.
알베르 카뮈는 사르트르와 더불어 무신론적 실존철학의 대부이다. 그는 부조리에 직면한 여러 유형들의 사람을 통해 자신의 실존적 입장을 보여주었다. 타루라는 인물로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죄’라는 페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세상은 죽음에 직면하고, 그것을 이겨내려면 모두 실존적 노력을 해야 한다.
소설의 결말은 페스트를 이겨낸 사람들이 기뻐하지만 군중이 모르는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가구나 옷장 속에 꾸준히 살아있어 인간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다시 나타날 것을 암시하는 문구로 끝낸다. 어느 선교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치사율 운운하며 전파자의 경로까지 파악하고 대비하지만 정작 치사율 100%인 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수수방관하고 있다.” 
카뮈는 그 문제의 해법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근처까지는 갔지만 소설 안에서 예수 보혈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그는 나중에 미국인 목사의 전도로 거듭남에 대한 소망도 품었고 세례까지 받으려 했으나 유아세례로 만족해야 했고, 몇 달 뒤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소설 속 분신인 타루처럼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실존적 삶을 살았으나 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페스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정말 정신 차리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 허원희 목사(남양주 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