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전도대상자가 부담스러워 해요”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세요
“전도대상자가 부담스러워 해요”
“내가 전하는 복음이 상대방에게 온전히 기쁜 소식으로 들리지 않아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늘 좋은 소식이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사랑 안에 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때 우리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전도대상자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 낌새를 알아차리면 될 수 있는 대로 짧고 지루하지 않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좀 불편해서 오래 들을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듣기를 부담스러워하면 얼른 멈추고 “힘들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화제를 바꿔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 기회가 다시 엿보이면 복음으로 돌아가 전한다. 결국 그 전도대상자는 마지못해 믿겠다고 영접한다. 이렇게 전도를 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마음의 기쁨보다 불편함이 있고, 의문이 들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될 소식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소식이어야 하는 복음이 부담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도대상자가 절박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이 심해서, 전도자의 영적 준비가 부족해서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전했던 복음이 온전하게 좋은 소식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복음을 전할 때 “만일 오늘 밤 죽게 된다면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라며 구원의 확신을 질문한다. ‘만일’이라는 가정이 전제된 질문이지만 그들은 죽음, 죄, 지옥, 회개, 영생이라는 단어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길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오히려 죄인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하며 마음을 닫아 버린다. 사람들은 사후보다 현실문제에 관심이 많다. 자신이 처해 있는 문제에 대한 고민과 짐들이 많아서 미래의 일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을 전도자가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은 이러한 사람들에게조차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사후 삶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다루어야 한다. 예수님은 영생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과 친밀한 삶인 영생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고, 우리가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갈 때도 계속된다. 영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대한 소식이다.
전도는 천국이 죽어서 가는 것뿐 아니라 지금도 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천국의 임재를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늘 좋은 소식이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때 우리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 된다.
장독을 들추면 그 아래 숨어 있던 벌레가 빛을 피해 얼른 도망가 버린다. 마찬가지로 어둠에 갇혀 살던 자에게 갑자기 강렬한 빛을 비추면 도망간다. 그러므로 때로는 ‘죄인’이라는 단어보다 ‘무거운 짐’이라는 단어로 서서히 빛을 비추면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부담스러운 복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현재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기쁜 소식을 전하자.
/ 박인숙 권사(신용산공동체,<전도여왕의 전도 레시피> 저자)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될 소식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소식이어야 하는 복음이 부담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도대상자가 절박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이 심해서, 전도자의 영적 준비가 부족해서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전했던 복음이 온전하게 좋은 소식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복음을 전할 때 “만일 오늘 밤 죽게 된다면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라며 구원의 확신을 질문한다. ‘만일’이라는 가정이 전제된 질문이지만 그들은 죽음, 죄, 지옥, 회개, 영생이라는 단어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길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오히려 죄인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하며 마음을 닫아 버린다. 사람들은 사후보다 현실문제에 관심이 많다. 자신이 처해 있는 문제에 대한 고민과 짐들이 많아서 미래의 일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을 전도자가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은 이러한 사람들에게조차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사후 삶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다루어야 한다. 예수님은 영생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과 친밀한 삶인 영생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고, 우리가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갈 때도 계속된다. 영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대한 소식이다.
전도는 천국이 죽어서 가는 것뿐 아니라 지금도 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천국의 임재를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늘 좋은 소식이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때 우리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 된다.
장독을 들추면 그 아래 숨어 있던 벌레가 빛을 피해 얼른 도망가 버린다. 마찬가지로 어둠에 갇혀 살던 자에게 갑자기 강렬한 빛을 비추면 도망간다. 그러므로 때로는 ‘죄인’이라는 단어보다 ‘무거운 짐’이라는 단어로 서서히 빛을 비추면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부담스러운 복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현재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기쁜 소식을 전하자.
/ 박인숙 권사(신용산공동체,<전도여왕의 전도 레시피> 저자)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