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떠나는 '신앙교육여행'] 순교를 품다 / 전남 영광 '야월교회' 그리고 '염산교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신앙교육여행’
순교를 품다
전남 영광 ‘야월교회’ 그리고 ‘염산교회’
전남 영광 ‘야월교회’ 그리고 ‘염산교회’
3월은 봄을 만나는 계절이다. 새로운 생명과 기쁨을 예고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교회력 시선으로 보면 사순절(재의 수요일에서 수난주간 토요일까지 46일이지만, 여섯 번의 주일을 뺀 40일을 가리킨다. 주일은 작은 부활절로 기쁨의 날이므로 사순절에서 빠진다)이 끼어있는 달이다. 보통 2월 말에 시작해서 4월 첫째 주까지 이어진다. 3월은 한 달 내내 사순절을 보내는 달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의미 있게 사순절을 보내도록 3월의 신앙교육여행 주제를 ‘순교’로 정했다.
‘순교’라는 단어에서 오는 어감 자체가 무겁고, 진지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편이다. 이와 같은 느낌 때문에 이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되도록 멀리하거나 피하고 싶고, 아니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어떤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을까? 이번 사순절을 보내면서 순교에 대해서 묵상하고, 어떤 믿음과 삶의 자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이번 신앙교육여행지는 순교의 역사를 품고 있는 전라남도 영광군이다.
첫 번째로 떠나볼 곳은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에 위치한 ‘야월교회’다 야월교회는 1908년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의 방문으로 시작된 교회다. 유진벨 선교사의 원래 방문 목적지는 야월리 포구가 아니었다. 남장로교는 전주, 군산, 나주, 목포에 선교센터를 만들어서 전라도에 복음을 전했다. 당시에는 육상도로가 좋지 않아서 배를 이용해 해안선을 따라 이동했는데, 유진벨 선교사가 법성포인줄 알고 들어온 곳이 바로 야월리 포구였다. 인간의 착오까지 하나님의 역사로 만드시는 은혜를 깨닫는 대목이다. 초기에는 ‘염산리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설립했고, 선교사들이 시무했다. 그 이후 여러 명의 조사, 전도사, 선교사 순회로 교회가 자랐다. 1938년에는 교회당을 이전하고, 명칭도 야월교회로 변경했다.
야월교회에는 교회당 옆에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이 있다. 왜 이곳에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이 있을까? ‘전교인 순교’라는 전 세계 어디 역사에도 볼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던 교회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살펴보면 순교자가 김성종(7명), 조양현(27명), 최판섭(10명), 김병환(7명) 등의 집안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순교 당한 역사는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신앙의 질문을 던져줄 것이다.
기독교인기념관은 전국 교회의 헌금과 영광군청의 지원으로 건립했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근사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서 지나가는 이도 한 번쯤 들러 보고 싶게 만드는 건물이다. 내부에는 바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신앙과 순교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간직하고 있다. 1층에는 순교역사자료를 사진과 조형물로 전시하고 있다. 중앙에 우뚝 솟아 2층까지 뻗어 있는 ‘기도하는 손’이라는 조형물은 순교역사자료를 돌아보는 이들에게 ‘신앙이란’ 혹은 ‘믿음이란’, ‘순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듯하다. 1층에 있는 자료들을 둘러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오늘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2층에는 예배실이 있고, 순교자들의 영정, 한국 교회의 다양한 옛날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부족함 없이 신앙역사 공부를 하도록 돕는다. 야월교회, 기독교인순교기념관 주변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순교’라는 단어를 품고 나와 우리, 그리고 민족과 열방에 대해서 묵상하면 좋겠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야월교회가 설립된 지 40년 뒤 세워진 ‘염산교회’다. 6·25전쟁 이전에는 이 지역에 야월교회와 염산교회만 있었다. 비극적인 전쟁은 이곳의 교회를 괴멸시키려 했다. 염산교회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전체 성도의 2/3에 해당하는 77명이 공산당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단일 교회로는 최대의 순교자를 품은 교회다.
이곳에서 3개월 동안 지속적인 박해가 일어났다. 박해는 염산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자행되었다. 공산당들은 교회당에 불을 지르고, 성도들을 찾아가 죽창으로 찌르고, 바닷가 수문통에 돌을 달아 수장시켰다. 성도들 모두 순교자가 되었다. 찬양을 부르고 피 흘리며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성도들,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어린 동생을 달래던 언니가 “울지마라 우리는 곧 천국 간다”라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와 은혜가 얼마나 큰 순교의 바탕 위에 세워졌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염산교회는 한국기독교 순교사적지 1호(장로교 합동교단)로 지정되었다. 2천여 평 교회부지에 순교공원도 조성했다. 그곳에 순교자료 전시관과 순교교육관을 개관해 200여 점의 자료 및 유물을 전시하고, 77인의 순교비를 교회 앞에 세웠다. 2016년에는 교회 한편에 ‘염산교회 순교기념성지 77인 순교 옛 예배당’을 헌당했다. 곳곳에서 숨겨진 이야기와 순교 역사를 찾아보는 의미 있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염산교회 앞마당에 마련된 순교자들이 메고 수장되었다는 돌들이 있는데 자신에게 맞는 돌을 골라 하나씩 들거나 메고 가까운 설도항 수문까지 걸을 수 있다. 돌을 짊어지고 침묵 가운데 순교를 묵상하며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이전과 조금 다른 사순절 신앙교육을 경험할 것이다.
/ 이세영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순교’라는 단어에서 오는 어감 자체가 무겁고, 진지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편이다. 이와 같은 느낌 때문에 이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되도록 멀리하거나 피하고 싶고, 아니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어떤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을까? 이번 사순절을 보내면서 순교에 대해서 묵상하고, 어떤 믿음과 삶의 자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이번 신앙교육여행지는 순교의 역사를 품고 있는 전라남도 영광군이다.
첫 번째로 떠나볼 곳은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에 위치한 ‘야월교회’다 야월교회는 1908년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의 방문으로 시작된 교회다. 유진벨 선교사의 원래 방문 목적지는 야월리 포구가 아니었다. 남장로교는 전주, 군산, 나주, 목포에 선교센터를 만들어서 전라도에 복음을 전했다. 당시에는 육상도로가 좋지 않아서 배를 이용해 해안선을 따라 이동했는데, 유진벨 선교사가 법성포인줄 알고 들어온 곳이 바로 야월리 포구였다. 인간의 착오까지 하나님의 역사로 만드시는 은혜를 깨닫는 대목이다. 초기에는 ‘염산리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설립했고, 선교사들이 시무했다. 그 이후 여러 명의 조사, 전도사, 선교사 순회로 교회가 자랐다. 1938년에는 교회당을 이전하고, 명칭도 야월교회로 변경했다.
야월교회에는 교회당 옆에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이 있다. 왜 이곳에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이 있을까? ‘전교인 순교’라는 전 세계 어디 역사에도 볼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던 교회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살펴보면 순교자가 김성종(7명), 조양현(27명), 최판섭(10명), 김병환(7명) 등의 집안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순교 당한 역사는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신앙의 질문을 던져줄 것이다.
기독교인기념관은 전국 교회의 헌금과 영광군청의 지원으로 건립했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근사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서 지나가는 이도 한 번쯤 들러 보고 싶게 만드는 건물이다. 내부에는 바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신앙과 순교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간직하고 있다. 1층에는 순교역사자료를 사진과 조형물로 전시하고 있다. 중앙에 우뚝 솟아 2층까지 뻗어 있는 ‘기도하는 손’이라는 조형물은 순교역사자료를 돌아보는 이들에게 ‘신앙이란’ 혹은 ‘믿음이란’, ‘순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듯하다. 1층에 있는 자료들을 둘러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오늘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2층에는 예배실이 있고, 순교자들의 영정, 한국 교회의 다양한 옛날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부족함 없이 신앙역사 공부를 하도록 돕는다. 야월교회, 기독교인순교기념관 주변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순교’라는 단어를 품고 나와 우리, 그리고 민족과 열방에 대해서 묵상하면 좋겠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야월교회가 설립된 지 40년 뒤 세워진 ‘염산교회’다. 6·25전쟁 이전에는 이 지역에 야월교회와 염산교회만 있었다. 비극적인 전쟁은 이곳의 교회를 괴멸시키려 했다. 염산교회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전체 성도의 2/3에 해당하는 77명이 공산당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단일 교회로는 최대의 순교자를 품은 교회다.
이곳에서 3개월 동안 지속적인 박해가 일어났다. 박해는 염산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자행되었다. 공산당들은 교회당에 불을 지르고, 성도들을 찾아가 죽창으로 찌르고, 바닷가 수문통에 돌을 달아 수장시켰다. 성도들 모두 순교자가 되었다. 찬양을 부르고 피 흘리며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성도들,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어린 동생을 달래던 언니가 “울지마라 우리는 곧 천국 간다”라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와 은혜가 얼마나 큰 순교의 바탕 위에 세워졌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염산교회는 한국기독교 순교사적지 1호(장로교 합동교단)로 지정되었다. 2천여 평 교회부지에 순교공원도 조성했다. 그곳에 순교자료 전시관과 순교교육관을 개관해 200여 점의 자료 및 유물을 전시하고, 77인의 순교비를 교회 앞에 세웠다. 2016년에는 교회 한편에 ‘염산교회 순교기념성지 77인 순교 옛 예배당’을 헌당했다. 곳곳에서 숨겨진 이야기와 순교 역사를 찾아보는 의미 있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염산교회 앞마당에 마련된 순교자들이 메고 수장되었다는 돌들이 있는데 자신에게 맞는 돌을 골라 하나씩 들거나 메고 가까운 설도항 수문까지 걸을 수 있다. 돌을 짊어지고 침묵 가운데 순교를 묵상하며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이전과 조금 다른 사순절 신앙교육을 경험할 것이다.
/ 이세영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