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기독교 세계관과 영역주권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기독교 세계관과 영역주권
 
"영역주권을 세워야 할 그리스도의 일터는 교회뿐만 아니다. 
교회 밖을 나서자마자 다가오는 세상의 수많은 영역이다."
 
교회에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이야기한 영역주권에 대한 인식이다. 둘째, 기독교 변증론(apologetics)적 중요성이다. 영역주권은 기독교인이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청지기적 사명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매우 능동적 기능을 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관 교육의 변증론적 기능은 파상적으로 밀려드는 비기독교적 사상으로부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체계로 기독교 신앙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든 현상이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 과학주의 시대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 언론인이며 수상을 지낸 아브라함 카이퍼가 1880년 10월 그가 설립한 자유대학 설립기념사에서 처음 선포했다. 당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은 로마 시대 이후 약 천 년 동안 모든 영역을 지배해오던 기독교가 인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상 등에 크게 도전받고 있던 시대였다. 
영역주권이란 세상의 모든 영역은 개별적으로 각자 중심점을 가지는 원(circle)으로서 존재하듯이 개별적 주권을 가지되, 그 모든 영역의 주권자는 하나님이므로 기독교인은 각자 속한 곳에서 청지기적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역주권적 사상은 갈릴레오와 함께 과학혁명의 선구자였던 17세기 독일 천체물리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의 고백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신학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천문학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역주권 사상은 세속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상에 지쳐서 교회를 도피처로 생각하고, 교회 생활에 안주하는 패배주의적 기독교인에게 매우 도전적인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부 세속화된 교회나 단체가 영역주권을 곡해해서 교회의 승리주의나 세상에서의 교회 패권주의를 강조하는 현상도 매우 경계해야 한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교회가 영웅시한다든지 세상의 모든 영역을 기독교 엘리트로 채움으로써 세상을 지상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은 오히려 국가가 교회, 가정, 문화를 지배하려는 당시 유럽 사회의 반기독교적 분위기에서 선포되었다. 교회의 주권을 국가나 그 어떤 다른 영역이 침해할 수 없다는 방어적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지배에서 매우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민족적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한결같이 소금이 녹아 그 역할을 다하듯이 겸손하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십자가 대속이라는 영역에서 청지기적 삶의 표본이 되셨다. 하나님은 화려한 최고의 위치가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며 “겸손하고 성실하고 순종으로 임하라”고 가르치신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 
하나님의 주권으로 가득해야 할 가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교육 등 수많은 영역이 기독교인들 앞에 놓여 있다. 그곳은 대부분 세상 권세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 5:6)라고 말씀하셨다. 소금은 소금끼리 모여 있으면 존재 가치와 의미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러했듯이 세상 속에서 겸손하게 녹아야 할 소금이다. 영역주권을 세워야 할 그리스도의 일터는 교회뿐만이 아니다. 교회 밖을 나서자마자 다가오는 세상의 수많은 영역이다. 
/ 신무환 장로(서빙고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