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 은혜의 옷을 입고 세상 속으로!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은혜의 옷을 입고 세상 속으로!
"특별은혜를 경험한 자의 뜨거운 영성과
일반은혜 영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랑으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
일반은혜 영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랑으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이를 ‘특별은혜(Special Grace)’의 영역이라고 한다. 반면 모든 사람에게 구분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은혜의 영역은 ‘일반은혜(Common Grace)’라고 한다. 하나님의 보편적 은혜는 모든 영역과 사람들에게 지금도 미치고 계신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일반은혜는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이 강조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에 이어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체계화했다. 특히 카이퍼는 일반은혜의 개념을 “모든 세상 영역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그 유명한 영역주권으로 확장했다.
비록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은 왜곡되고 타락하였으나(롬 8:22), 하나님은 여전히 일반은혜로 이 세상을 사랑하고, 붙들고 계신다. 인간의 죄와 욕심으로 자연 세계가 무참하게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자연은 하나님의 속성과 아름다움을 최선을 다해 당당하게 뽐내고 있다. 미세먼지로 흐릿한 시야에서도 봄철을 맞아 피어나는 분홍빛 철쭉이 얼마나 애련하면서도 아름다운가?
하나님은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창작능력과 감수성도 인간에게 허락하셨다. 결혼식장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라는 감미로운 바이올린 곡은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가 그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만든 걸작이다. 찬송가 작가들의 작사나 작곡의 배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은혜나 간증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에 상관없이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큰 기쁨과 감동을 준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시면서도 그의 후손인 야발, 씰라, 두발가인을 각각 축농업, 금속가공업, 음악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창 4:20~22). 하나님은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법칙들을 만들고 주관하신다. 교회의 높은 지붕 위에 피뢰침을 설치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학 법칙을 그분의 변치 않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백신주사를 맞고, 의료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모든 인류에게 평등하신 하나님의 일반은혜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극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탄의 시험으로 해석하기보다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이성적 고찰과 반성이 오히려 신앙적인 경우가 많다.
일반은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영원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이원화하는 루터파의 오류를 현대 교회에서도 반복하게 만들 수 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정지되거나 부재한 경우가 없었던 일반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특별은혜로 구원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흔적을 찾게 되어 있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이 아직도 애타게 기다리시는 백성들이 있는 세상을 본능적으로 보게 된다. 일반은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한 어색한 걸음에 매우 중요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접점을 제공하고,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이원적 신앙형태를 지양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한국 교회는 특별은혜와 일반은혜의 교육균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일반은혜의 영역을 감사함으로 누리는 법을 자녀들에게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제사장으로서 구별되어 특별은혜만 누리며 교회 안에만 머무는 사무엘은 결코 이 시대 모든 신앙인의 표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으로 들어가는가? 특별은혜를 경험한 자의 뜨거운 영성과 일반은혜 영역에 나타난 광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랑으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신무환 장로(서빙고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일반은혜는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이 강조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에 이어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체계화했다. 특히 카이퍼는 일반은혜의 개념을 “모든 세상 영역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그 유명한 영역주권으로 확장했다.
비록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은 왜곡되고 타락하였으나(롬 8:22), 하나님은 여전히 일반은혜로 이 세상을 사랑하고, 붙들고 계신다. 인간의 죄와 욕심으로 자연 세계가 무참하게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자연은 하나님의 속성과 아름다움을 최선을 다해 당당하게 뽐내고 있다. 미세먼지로 흐릿한 시야에서도 봄철을 맞아 피어나는 분홍빛 철쭉이 얼마나 애련하면서도 아름다운가?
하나님은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창작능력과 감수성도 인간에게 허락하셨다. 결혼식장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라는 감미로운 바이올린 곡은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가 그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만든 걸작이다. 찬송가 작가들의 작사나 작곡의 배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은혜나 간증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에 상관없이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큰 기쁨과 감동을 준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시면서도 그의 후손인 야발, 씰라, 두발가인을 각각 축농업, 금속가공업, 음악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창 4:20~22). 하나님은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법칙들을 만들고 주관하신다. 교회의 높은 지붕 위에 피뢰침을 설치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학 법칙을 그분의 변치 않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백신주사를 맞고, 의료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모든 인류에게 평등하신 하나님의 일반은혜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극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탄의 시험으로 해석하기보다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이성적 고찰과 반성이 오히려 신앙적인 경우가 많다.
일반은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영원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이원화하는 루터파의 오류를 현대 교회에서도 반복하게 만들 수 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정지되거나 부재한 경우가 없었던 일반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특별은혜로 구원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흔적을 찾게 되어 있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이 아직도 애타게 기다리시는 백성들이 있는 세상을 본능적으로 보게 된다. 일반은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한 어색한 걸음에 매우 중요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접점을 제공하고,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이원적 신앙형태를 지양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한국 교회는 특별은혜와 일반은혜의 교육균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일반은혜의 영역을 감사함으로 누리는 법을 자녀들에게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제사장으로서 구별되어 특별은혜만 누리며 교회 안에만 머무는 사무엘은 결코 이 시대 모든 신앙인의 표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으로 들어가는가? 특별은혜를 경험한 자의 뜨거운 영성과 일반은혜 영역에 나타난 광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랑으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신무환 장로(서빙고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