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기독문화 유적지'] 시대를 깨운 '진주교회'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기독문화 유적지’
시대를 깨운 ‘진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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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1925년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기까지 경상남도의 행정, 경제, 문화 중심지였다. 진주는 평양과 비견되면서 ‘북평양, 남진주’라 불렸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남강이 아름답고, 남강변에는 비옥한 농토가 펼쳐져 멋과 맛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어디 그뿐인가? 인물 또한 많아서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풍족한 도시다.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남강변 진주성에서 있었다. 진주성에는 논개의 의로운 죽음을 증명하는 촉석루와 의암(義巖)이 있다. 진주인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일제강점기 기근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구휼하기 위해 많은 재산을 내놓은 박헌경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이 되었다. 진주 남동쪽 승산은 LG, GS그룹을 창업한 창업주들이 태어난 마을이고, 지수초등학교는 삼성, LG, GS, 효성그룹 창업주들이 다녔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만큼 우시장이 성행했었기에 소고기 요리 중 하나인 육회비빔밥도 유명해졌다. 진주냉면은 전국에 이름난 냉면 족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진주는 경남의 핵심 지역이었기에 선교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었다. 진주에서 선교사역이 성공적으로 안정된다면 주변(하동, 산청, 함양, 남해, 고성, 사천, 의령)으로 확산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판단되었다. 지역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 때문에 그들이 신문물을 접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복음도 따라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1905년 호주 최초 의료선교사였던 휴 커렐(Hugh Currel, 한국명 거열휴, 1871-1943)의 요청으로 진주선교부가 설립되었다. 휴 커렐은 부산 선교사역이 안정을 얻자 동역자 박성애 부부와 함께 진주로 자리를 옮겼다. 북문 안에 자리를 잡고 시약소(진료소)를 열어 주민들을 치료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때 초가 10칸을 사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진주교회의 시작이었다. 1906년과 1933년 예배당을 거듭 건축해야 할 만큼 교회 성장이 빨랐다.
휴 커렐은 의료와 교육 선교를 동시에 시작했다. 1913년 경남 최초의 병원인 ‘배돈병원’을 설립하고 의료혜택을 베풀었다. 호주 장로회 소속인 페이든(Paton) 여사를 기념해 ‘배돈병원’이라 했다. 남녀사립학교인 ‘광림학교’와 ‘시원학교’도 설립해 신학문을 가르쳤다. 1916년에는 유치원을 개원했고, 소년회를 조직해 어린 학생들에게 희망을 줬다. 
1909년 라이올(D. M. Lyall, 한국명 나대벽) 선교사는 일반인과 백정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 뜻에 부합한다며 차별을 없앴다. 그리고 백정들도 교육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며 학교 문을 열었다. 그러자 15명의 백정이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 백정과 함께 예배 드릴 수 없다며 많은 신도가 교회를 떠나버렸다. 신분제가 철폐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신도들을 찾아가 간곡하게 설득했더니 그들도 마음을 열고 백정들과 함께 예배드렸다.
진주교회에서 벌어진 백정 해방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최초 인권운동으로 알려진 ‘형평운동’의 발화점이 된 것이다. 1923년 4월 진주청년회관에서 강상호의 주도로 70여 명의 사회운동가와 백정들이 모여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고자 ‘형평사’를 조직했다. 사회지도자들과 백정들이 하나 되어 ‘신분해방운동’을 일으키자 그것이 전국으로 확산했다. 1년 만에 전국에 지사 12개, 분사 67개가 설치되었다. 그 이후 형평운동은 사회운동단체와 연대해 신분 해방뿐만 아니라 ‘민족해방운동’으로 확산해나갔다. 일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해체되기는 했지만, 교회가 다시 한번 시대를 깨우는 역할을 했다.
진주교회 마당에는 2012년 복원한 종과 종탑이 있다. 이 종은 1919년 진주 3.1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2013년에는 형평운동 90주년을 맞아 표석을 세웠다. 그 표석에는 ‘진주에서 최초로 일반인들과 백정들이 함께 예배 본 교회’라 쓰여 있다. 교회에서 100m 떨어진 공원에 배돈병원과 광림학교 터를 알리는 표석도 세웠다. 교회 왼편에는 비전관을 설립하고 ‘커렐 메모리얼 비전센터’라 이름 지었다. 비전관 6층에는 교회역사실이 마련되어 있다. 
/ 임찬웅 집사(남양주온누리교회, 문화해설사, <강화도(준엄한 배움의 길)> 저자)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