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신앙에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교회에서도 장례사역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나는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직 살아계신 분들이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고 천국 소망을 갖게 하는 일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시간 순서대로 탄생해도 죽을 때는 순서대로 죽지 않는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 노인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오래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삶을 더 의미 있고, 농밀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본다. 이것이 죽음이 주는 지혜라고나 할까?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할 수 없고,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직시하고 묵상해야 인생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현재 남아있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려고 할 때 거리낌이 생기고, 부정하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은 실로 두려운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있는 성도들도 두려움을 느낀다.
성경은 사람이 두 번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육신의 죽음이고, 두 번째는 영혼의 죽음, 다시 말해 심판 후에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는 죽음이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죽음이다. 다행히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두 번째 죽음을 피할 길을 주셨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심으로 멸망에서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지닌 자들은 두 번째 죽음을 겪지 않는다. 이것이 복음이요,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최고의 준비가 무엇일까? 죽는 순간까지 삶을 100% 누리며 두려움 없이 죽는 방법이 무엇일까? 돈? 명예? 지식? 건강?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살아서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나 대신 내 안에 살게하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을 기대하며 살게 된다.
사도 바울의 유언이 그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준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이 땅에서 사는 것의 시작이 출생이라면, 천국에서 사는 것의 시작은 죽음이다. 무엇이 더 값진 것인가? 출생보다 영생의 시작이 중요하다. 죽음의 고통보다 천국의 영광이 위대하다. 죽음이 영생을 시작하는 통과의례라면 그것을 회피하기보다 믿음으로 직면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가오고 있다. 
/ 허원희 목사(장례사역)

작성자  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