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살라!
이재훈 목사
오늘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은 때가 되면 지키고 끝내는 절기가 아닙니다. 부활절은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예배드리는 사람 중에서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고, 믿음의 중심이 되고, 날마다 삶속에서 역사하는 현실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만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보여줬습니다. 도마는 자기 손으로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던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회복시킨 이유가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만난 예수님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만나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주신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두 제자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습니다. 열두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여행한 거리는 11Km정도 됩니다. 걸어서 두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예수님이 11km정도 거리를 그들과 동행했습니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도 되는데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걸으면서 대화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얼마나 인내심이 많고, 따뜻한 분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잠시만 나타나도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몇 시간 동안 대화를 해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물으셨습니다. ‘무슨 일이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 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능력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주어 사형 선고를 받게 했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을 구속해 주실 분이 바로 그분이라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3일째 됐는데 우리 중 몇몇 여인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이 아침 일찍 무덤에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들이 예수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 보았더니 그 여인들이 말한 대로 그분을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19~24절).
그들의 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말과 행동에 능력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셋째, 많은 사람이 확인해 보니 진짜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덤이 비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빈 무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로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슬퍼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예언자로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했고,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16절).
그들은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꼭 육신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 봐도 못 보는 것이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세상이 그 색으로 보입니다. 노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입니다.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세계관에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그들의 세계관에 부활이 있었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가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 눈에 보인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이 세상에 닫힌 세계관에 가려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영혼들이 이 있다면 그들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하는 두 제자와 동행한 것처럼 이 세상의 세계관에 가려져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곁에 계십니다.
It’s Friday but Sunday is coming
20세기 미국 샌디에고 갈보리침례교회에서 사역하셨던 ‘SM 락 리지’라는 목사님의 설교가운데 잘 알려진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감동적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시입니다.
It’s Friday but Sunday is coming
(그것은 금요일 입니다. 그러나 주일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금요일 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베드로는 잠을 자며
유다는 배신을 하게 되는데
하지만, 주일은 옵니다.
금요일 입니다.
빌라도는 갈등을 하고
지도자들은 음모를 꾸미며
군중들은 비난하는데
그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금요일입니다.
제자들은 우왕좌왕합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처럼
마리아는 울고 있고
베드로는 부인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들은 모릅니다.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금요일입니다.
로마인들은 예수님을 때렸고
그에게 주홍색 가운을 입혔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금요일입니다. 하지만
갈보리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피를 흘리며
온몸이 비틀거리고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그의 영혼을 짓누르는데
하지만, 지금은 단지 금요일 일뿐
주일은 오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세상은 승리하고 있고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있고
그리고 악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병정들은 나의 구세주의 손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나의 구세주의 발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범죄자들 사이에
금요일 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 말씀 드리죠.
주일은 옵니다.
금요일입니다.
제자들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왕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 있었을까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작전이
드디어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은
지금은 단지 금요일
주일은 오고 있습니다.
금요일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음을 느끼며
죽도로 내버려져
그 누가 그를 살릴 수 있을까?
오
금요일입니다.
하지만 주일은 오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온 땅이 흔들리고
하늘은 흑암으로 덮히며
나의 왕이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금요일입니다.
소망은 온전히 없어졌고
죽음이 이겼고
죄가 승리함으로
사단이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은 묻혔고
군인이 보초를 서 있고
돌은 무덤입구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금요일입니다.
단지 금요일일 뿐입니다.
주일은 옵니다!
그들은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 금요일에 멈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주일입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왜 안식일이 주일로 변했습니까. 부활의 아침을 기념하며 안식일을 주일로 바꾼 것입니다. ‘주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금요일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부활은 십자가 도의 완성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고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게 믿는 사람들이여! 그리스도께서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5~26절).
십자가 없는 것은 부활은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믿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왜 필요했는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도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부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해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해 언급된 것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27절).
성경 전체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고 있음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인생이라는 퍼즐을 맞추기 위해 보는 전체 그림입니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엠마오에 도착해서 함께 식사하는데 예수님이 이상한 행동을 하십니다. 분명 예수님이 손님이고, 그들이 주인인데 예수님이 주인처럼 떡을 떼어 감사기도를 하고 그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상에 기대어 앉아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 떼어 그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께서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30~31절).
여러분, 눈이 열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순간의 체험으로, 한 번의 성경공부로, 한 순간의 예배드림으로 눈이 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중에 예수님의 역사하심으로 눈이 온전히 열리게 됩니다. 지금 당장 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서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들이 가는 인생 여정에 함께 걸어 주십시오. 그들과 식사하는 중에 성령님이 온전히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부활은 지금 여기서 체험해야 하는 삶입니다. 식사하는 것과 같이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부활의 생명으로 날마다 부활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닫혀 있는 눈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