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
이재훈 목사
요즘은 하나님을 가볍고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문화를 더 무겁게 여기고, 하나님과의 만남보다 사람과의 만남을 더 무겁게 여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영광이라는 단어는 ‘카보드’입니다. 카보드는 무겁다는 의미의 ‘카베드’에서 기원했습니다. 히브리 시대에는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힘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무겁다는 단어를 썼습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그 육축과 재산이 풍부하였다고 했는데 여기서 풍부하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도 무겁다는 단어를 썼습니다. ‘무겁다’는 단어에서 ‘영광’이라는 단어가 기원했습니다. 영광은 무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무게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중심은 무게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치우치게 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무게 있는 분이신지를 돌아봐야합니다.
백성들을 구원하고 인도하신 이유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셨기에 그분은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셨기에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지 않으셨어도,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셨어도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스스로 영광스러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을 예배하고, 높여드리며,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났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그 영광을 잠시 보여주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그 영광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들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롬 3:23).
죄 때문에 인간이 잃어버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인간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무게를 잃어버리면 위험합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소유, 권력, 명예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채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고,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시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변화시킨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성막은 공간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한 장소에 머물기 위해 만든 집입니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한 시대의 백성들과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증표입니다.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어느 곳에나 계시는 하나님이 왜 한 장소에만 머무시겠다고 하시는 걸까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왜 인간들과 동행하겠다고 하실까요. 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그분의 백성이 되는 일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드디어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막이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기까지 세 가지 중요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첫째,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 재료를 어떻게 구하라고 하셨습니까. 기꺼이, 기쁘게, 즐겁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자들에게서 재료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으로 만들도록 명령하신 모든 일에 필요한 것들을 기꺼이 예물로 여호와께 가져온 것입니다”(출 35:29).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가져온 재료들이 너무 많아서 성막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그만 가져오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재료를 가져다달라고 호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감동적인 연설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나온 자발적 헌신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영혼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습니까.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기쁨으로, 기꺼이, 즐거이, 헌신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재능
둘째, 정교하고 탁월한 기술입니다.
“그러니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여호와께서 기술과 능력을 주어 성소 짓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그 일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세는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여호와께 지혜를 얻고 기꺼이 와서 그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출 36: 1~2절).
하나님이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정교한 기술과 탁월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막의 청사진을 보면 아주 정교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영광스러운 집을 짓는 기술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 탁월한 재능과 기술, 탁월한 지혜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약에 어리석은 사람을 택해 지혜로운 사람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해서 어리석게 살아야 된다고 적용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가장 뛰어난 지식과 탁월함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에 영광으로 임재하시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탁월한 기술과 재능, 지식을 부어달라고 간구해야합니다.
절대적인 순종
셋째,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성막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막, 곧 회막 짓는 모든 일을 마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대로 한 것입니다”(출 39:32).
하나님은 성막에 대한 청사진을 아주 구체적으로 주셨습니다. 아웃라인만 주시고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치 하나하나까지 주셨습니다. 사람의 아이디어가 조금도 들어갈 틈이 없이 완벽한 청사진을 주셨습니다. 조금도 바꿀 수 없고, 조금도 더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그대로, 말씀하신 재료로, 말씀하신 수치대로 순종했습니다. 오직 들은 대로만 성막을 지었습니다. 백성들의 자발적 헌신으로 드린 재료,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지혜와 기술, 하나님 말씀대로만 행하는 절대적 순종 이 합해져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의 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과 행하는 모든 일에 자발적 헌신,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기술, 절대적 순종이 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합해져 성막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여호와의 영광의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성막을 세웠습니다. 성막을 세우는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1년이 된 날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에 성막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기도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이 새로운 역사가 되었던 것처럼 성막도 그들에게 새로운 역사가 되엇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막을 덮은 구름, 관계의 회복
바로 그때 성막에 구름이 덮여졌다고 했습니다. 성막에 구름이 덮어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구름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 지금까지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한 구름입니다. 그 구름이 성막을 덮었습니다. 성막을 덮은 구름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회복을 의미합니다. 포옹은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 끊어졌던 사람과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행동입니다. 이 구름도 같은 의미입니다. 영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성막에 덮어진 구름은 마치 하나님이 백성을 덮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성막 청사진을 주실 때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배역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 뻔했습니다. 진멸당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관계를 지속하셨습니다.
성막은 진멸 받아 마땅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관계의 회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막을 덮은 구름입니다.
무지의 구름, 하나님의 전부를 알 수 없다
둘째, 구름은 무지의 구름입니다.
“구름이 회막 위에 머물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했기 때문에 모세는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출 40:35).
왜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을까요. 시내산 위에 올라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었던 모세가 왜 이 성막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줍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멀리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그 영광의 빛이 얼굴에 나타날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렸던 모세였지만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무지의 구름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두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언제나 무지의 구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는 상태로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두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순간 심각한 교만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어느 신학자는 무지의 구름이라고 비유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에 관해 이해하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분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서 도달하는 최종단계는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분이라는 점을 알게 될 뿐이다.”
알 듯 모를 듯한 분이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는 무지의 구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 어떤 철학과 관념, 개념과 논리로 아는 분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예배하고, 경배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전부 이해하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을 모두 깨달아서 예배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무지의 구름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두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전부를 깨달을 수 없지만 순종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무지의 구름아래서 하나님을 사랑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이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입니다. 우리가 전부 다 알 수 없는 하나님,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 무지의 구름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진실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인도하는 구름, 앞서가시는 하나님
셋째, 인도의 구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서가시며 그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여정 동안에 구름이 성막 위로 뜨면 떠났고 구름이 뜨지 않으면 뜨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습니다”(출 40:36~37).
성막에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는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인도하는 구름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이동하며 임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주변을 맴도는 분이 아닙니다.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에 계십니다. 그 중심에서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군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왕궁에서 안락하게 계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사막의 길을 가면 함께 사막을 걷고, 백성들이 광야를 가면 함께 고통당하시며 광야를 걷는 분입니다.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가시며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어려울 때 당했을 때 “어디 계십니까?”라고 기도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고통당하고, 동행하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만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과는 성막위에 떠있는 구름이 어디로 향하느냐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왜 위를 보게 하셨을까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헬라어로 ‘앤드로퍼프’입니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땅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위를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삶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보고 따라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막을 덮은 구름은 회복의 구름, 무지의 구름, 인도하심의 구름입니다. 성막위에 임하셨던 그 영광스런 구름이 우리가 가는 곳마다 동일하게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모든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구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삶을 인도할 것입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