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하나님의 임재

이재훈 목사

여행할 때 함께 동행 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행을 갔는데 룸메이트가 하나님이라면 환호성을 지르겠습니까 아니면 불편함을 느끼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이유는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한 두 시간 예배당에서 만나는 것은 괜찮지만, 함께 방을 쓰면서 여행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굉장히 완고하고, 엄격하고, 냉혹한 분이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이 많고, 정말 좋으신 하나님도 용납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좋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의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완고하고, 예민한 이기주의자가 아닙니다. 때로 징계도 하시지만 사랑으로 미소 짓고, 손잡아 주시는 분입니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모세가 진멸 받아 마땅한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 했을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진노를 돌이켜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늬 하나님이시라면 그와 동행하는 인생은 기쁘고 즐거운 여행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하나님은 온 땅에 충만하신 분입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분입니다. 이것을 ‘편재하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는 분이지만 모든 곳에 임재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다’는 것은 기쁘게 동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지옥에는 임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곳에 임재하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는 이유는 죄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편재하심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환영하고, 동행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아무렇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 안에 살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의 거룩한 산에 살 사람이 누구입니까?”(시 15:1).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구나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을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죄인 된 인간이 주님을 만날 뿐 아니라 그분의 임재하심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 아니었다면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규례도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간혹 나타나십니다. 족장들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제단은 임시적이고 일시적이었습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지으실 집을 만들라는 명령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백성들 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깊이, 더 지속적으로 임재하기 위해 백성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계획이 깨질 뻔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끊고, 그들을 진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때 모세의 중보기도가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중보기도

출애굽기 32장부터 33장에까지 모세의 중보기도가 세 번 나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깨질 뻔한, 깨져야 마땅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첫 번째 중보기도는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을 때 드린 기도입니다. 시내산 밑에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리의 신이라고 숭배하자 하나님이 백성을 진멸하고, 너로 새로운 민족을 만들겠다고 할 때 모세가 진노를 거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진노를 거둬주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중보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가 거둬졌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두 번째 중보기도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 밑으로 내려와 현장을 봤습니다.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기도할 때에는 아름다운 언어를 썼는데 내려와서는 엄청난 진노를 쏟아냈습니다. 금송아지를 녹여 백성들에게 먹이고, 돌 판을 던지는 등 매우 흥분했습니다. 모세는 그 가운데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백성을 용서해 주십시오. 만일 이 백성을 용서해주지 않으시려면 하나님이 기록한 책에서 제 이름을 빼주십시오.”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가 끊길지라도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백성을 구원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9장에서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겨질지라도 내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모세의 마음과 바울의 마음이 바로 자신을 희생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모의 두 번째 중보기도는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여호와께 돌아가 말했습니다. ‘오, 이 백성이 엄청난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기들을 위해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시지 않으신다면 부디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리십시오’”(출32: 31~32)”
얼마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기도입니까.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주시고, 가나안을 향한 여행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임재하심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백성들의 관계회복이 목적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이 백성들은 이곳을 떠나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네 자손에게 주겠다’라고 맹세한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내가 네 앞에 천사를 보낼 것이다. 내가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낼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니 여차 하면 내가 가는 도중에 너희를 멸망시킬지 모르니 말이다”(1~3절).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보내 인도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동행하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임재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속 좁은 분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동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면 도중에 멸망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임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진노로부터 건짐을 받고, 용서받았다고 해서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했다고 해서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용서한 사람과 동행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용서는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면제받고, 용서는 받았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회복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회개의 증거로 자신들이 치장하고 있는 모든 장신구를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세 번째 중보기도를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이 백성들을 이끌라고 줄곧 말씀해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나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고 너는 내게 은총을 입었다’라고 말입니다. 주께서 나를 기쁘게 여기신다면 제발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셔서 내가 주를 알게 하시고 계속해서 주께 은총을 입게 해 주십시오. 또 이 민족이 주의 백성들임을 생각해 주십시오”(12~13절).
모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를 통해 백성들을 향한 중보기도를 이어갑니다. 11절을 보면 모세가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과 대화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였음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과 백성들이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강렬하게 붙잡는 공격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먼저 주의 길을 가르쳐달라고 기도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은총을 입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회복 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베풀 의무가 없는 분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을 자격이 없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모세의 마음이 있다면

모세의 세 번째 중보기도를 보면 은총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에이든 토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선하게 만들려고 미친 듯이 노력함으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불완전함을 그의 팔에 내어맡기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한 삶을 사는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 민족이 주의 백성임을 생각해달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내가 너를 무사하게 할 것이다’”(14절).
하나님이 또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33장 초반부에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모세의 기도를 근거로 천사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변덕이 심한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자에게 언제나 돌이켜 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입니까. 진노를 거둬달라고 하면 진노를 거둬주시고, 용서해달라고 하시면 용서해주시고, 함께해 달라고 하면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언제나, 기꺼이, 어떠한 상황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겸손함으로, 은총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여정에 동행해 주십시오. 내 인생 여정에 친히 함께해주십시오”라고 기 도 하십시오.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아예 우리를 여기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나와 주의 백성들이 주께 은총을 입었는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와 주의 백성들이 지면의 다른 모든 백성들과 어떻게 구별되겠습니까?’”(15~16절).
모세는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여행은 의미가 없으니까 우리도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인도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만이 다른 백성들과 구별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다는 증거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없이 어떻게 우리가 갈수 있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세의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 마음이 있다면 우리 삶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모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시겠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더 영광스러운 분과 함께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는 호렙산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또 24장에서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제 세 번째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뒷모습만 봤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알려줍니까. 우리가 체험하는 그 어떠한 영광도 하나님의 영광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체험한 영광도 하나님의 뒷모습일 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전부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의 영광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영광보다 더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 영광스런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 하시고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원하십니까. 진노로부터 건짐 받고 용서받는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내 인생의 모든 여정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삶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모세의 마음을 받으시고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가 말한 그대로 내가 하겠다. 네가 내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모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여행하는 동안 친히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무리 거칠고 위험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친히 함께해주시면 두렵지 않고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날마다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간신히 구원받는 인생이 아니라 날마다 주의 임재하심 가운데 주와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