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얼굴의 광채
이재훈 목사
사람의 얼굴에는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도 나타납니다. 얼굴에 나타난 마음의 상태가 습관화 되면 인상이 되고, 표정이 됩니다. 관상을 보고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표정과 인상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여정을 어느 정도 엿볼 수는 있습니다.
표정이 달라졌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있던 모세의 얼굴이 변화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정확하게 80일 동안 시내산에 있었습니다. 40일 동안 시내산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산을 내려왔는데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건을 보고 그 돌 판을 깨버렸습니다. 모세는 다시 시내산에 올라가 40일을 더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율법을 새긴 돌 판을 받아 산을 내려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금식하며 이뤄졌습니다.
모세는 적어도 두 차례, 40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면 몸이 연약해지고, 얼굴이 초췌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80일 동안 금식한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으로 모세의 얼굴이 변화된 것입니다. 이 현상을 기계적으로나 문자적으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나누었던 교제를 우리도 동일하게 경험한다면 모세의 얼굴이 빛났던 것처럼 우리의 얼굴도 변화될 것이라는 것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심
모세가 40일 동안 기도했던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백성들을 향한 진노를 거둬달라고 간구한 이유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심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구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온전히 보지 못했습니다.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는 모세의 기도가 1,400년 이후 응답되었다고 했습니다. 1,400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그 사건을 1,400년 전 모세가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한 기도가 응답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지만 그 스스로가 영광스럽게 변화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엘리야와 모세가 승천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영광스럽게 변화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영광의 빛이 그의 얼굴에 임한 것입니다.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빛입니다. 여러분, 빛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면 삶 속에서 빛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80일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백성들을 향해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위한 기도도 들으시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기도에 더 귀 기울이십니다. 지진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네팔 시람들을 위해 나의 기도제목보다 더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마음과 교제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나 욕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거나 원수를 위해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영광의 빚을 비춰주십니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모세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모세의 얼굴이 빛났다는 문장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 ‘빛’이라는 단어와 ‘뿔’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비슷해서 오역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린 모세상이 보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번역이 잘못되어서 머리에 뿔이 난 모세상을 만든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인생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빛나는 얼굴이 될 것이고, 그 길이 아니라면 뿔난 얼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빛난 얼굴로 살 지 아니면 뿔난 얼굴로 살 지 두 가지 인생길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얼굴로 살아갔으면 졸겠습니다. 인생에 때로 보이지 않는 뿔이 튀어 나올 때도 있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자 백성들은 그 빛이 강렬하고, 두려워서 가까이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신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세는 시내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양손에는 증거판 두 개가 들려 있었습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말씀하셨음으로 인해 자기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29절).
모세는 왜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몰랐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에는 거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하느라 자기 얼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빛나기 위해서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 다른 영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치유도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치유의 절정은 나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자신을 잊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왜 고민이 없겠습니까. 요즘 심리적인 문제가 많아지는 것은 자기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자녀 다섯 이상을 키우는 부모에게는 우울증이 없다고 합니다. 우울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쏟아 부을 대상만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백성들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지도 몰랐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자기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실제로는 빛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자신이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빛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진정으로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은 그런 줄도 모릅니다. 영광은 스스로 주장하고, 추구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모르는 것이 진짜 영광의 임재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왼손이 모를까요. 이 말씀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진짜 겸손은 자기가 겸손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겸손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한 죄인의 모습으로 서는 것이 바로 나도 모르는 영광입니다.
모세의 수건과 예수 그리스도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보니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운 나머지 모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30절).
“모세는 그들에게 말을 마칠 때까지 자기 얼굴에 수건을 쓰고 있었습니다”(33절).
모세가 광채 때문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수건을 썼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배려한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얼굴에 나타난 영광의 광채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권력욕구가 무엇입니까. 자기 앞에서 사람들이 떠는 것을 즐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 앞에서 사람들이 굽신거리는 것을 즐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들은 잘못된 권력욕입니다. 무슨 말이든지 쏟아 내는 것을 즐기고, 그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잘못된 권력욕입니다.
만약 모세가 잘못된 권력욕을 가지고 있었다면 백성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는 것을 즐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림으로써 백성들이 가까이 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영광을 가릴 줄 아는 겸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영광스런 얼굴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들을 죽였습니까. 협박했습니까. 위협하는 행동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모세의 빛나는 얼굴이 두려웠을까요. 더 사랑하고, 더 기뻐하고, 더 즐거워하면 되는데 왜 두려워했을까요. 백성들 마음속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광채 나는 얼굴을 두려워하는 것은 백성들의 문제이지 모세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는 수건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수건을 쓴 것은 모세에게는 겸손의 징표지만 백성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난 그 영광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잠시 동안 빛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모세의 수건을 중재자 모세의 한계, 율법의 한계고, 옛 언약의 한계라고 평가 합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돌에 새긴 문자의 직분도 영광스러워 모세 얼굴에 나타난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얼굴을 주목할 수 없었다면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고후 3:7!8).
모세의 영광은 돌에 새겨진 영광이었습니다. 그 직분이 그렇게 영광스러웠다면 우리는 영의 직분이요, 새 언약의 직분인데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냐는 것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없어질 것의 결과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수건을 썼던 것과 같은 일을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들은 옛 언약을 읽을 때 오늘날까지도 수건을 벗지 못하고 계속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갈 때마다 수건은 벗겨집니다”(고후 3:13~16).
이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모세는 겸손의 상징으로 수건을 썼습니다. 백성들을 배려해서 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건은 율법의 한계, 옛 언약의 한계, 백성들의 한계, 중재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수건을 안 써도 됐습니다. 그 영광은 사라질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 수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수건으로 덥여져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수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수건을 쓰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수건을 벗고 만나야 합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광
모세를 의심하는 어떤 사람이 쓴 글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만날 때마다 수건을 써야만 했습니다. 영광의 광채로 얼굴에서 빛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세가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하려고 거울을 보았는데 그 영광이 사라졌습니다. 모세가 수건을 벗고 나간다면 그때부터 백성들은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진 것을 알고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백성들이 더 이상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을까봐 얼굴에 광채는 사라졌는데 계속 수건을 쓰고 나간다면 그것은 영광스럽지 못한 행동일 것입니다.’
순전히 상상이지만 일리 있는 상상입니다. 여러분, 영광의 광채가 사라졌는데 그 영광이 계속 있는 것처럼 수건을 쓰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성전에 나갈 때 수백 개의 금방패를 들어서 왕의 영광을 표시하는 행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금방패를 이집트왕에게 모조리 빼앗기자 못으로 만든 놋방패와 청동방패를 만들어 똑같이 흉내를 냈습니다. 영광은 잊어버렸는데 금방패가 없으면 청동방패라도 쓰자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신약의 해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모세의 영광은 사라질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일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습니다”(고후 3:18).
모세는 수건을 썼지만 우리는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고,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주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고,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얼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광의 광채가 비출 것입니다.
모세의 영광은 순간적, 일시적으로 빛나다 사라졌지만 우리의 심령 속에 주어진 주의 영광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