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영혼의 어두운 밤

이재훈 목사

16세기 수도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도원 개혁운동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의 영향력이 커지자 수도원 개혁운동을 반대했던 수도사들이 그를 납치해 톨래도 수도원이라는 곳에 11개월 동안 감금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눴고, 깊은 기도도 했습니다. 그가 당시 경험한 영적체험을 시로 기록했는데 그 시 해설서가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입니다. 그 책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속에서 괴로워하는 많은 성도들에게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독방에 갇혀 억울하고, 고생한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두운 독방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와 권면을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과 더 친밀한 연합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길이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는 어두운 밤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없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좋은 일, 기쁜 일, 즐거운 일, 환영하고 싶은 일, 축복 된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은 일만 계속 생긴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경건해지고, 거룩해질까요. 물론 긍정적 사고방식과 긍정적 믿음으로 나아가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확신만 있는 사람은 욥의 고난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잘못과 죄로 고난을 당할 때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있습니다.

욥의 놀라운 믿음과 고난

욥은 하나님이 자랑하실만한 동방의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 인물 중에서 하나님과 가장 가깝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축복도 받았습니다. 경건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런 욥을 사탄이 이렇게 고소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축복 때문이다. 만약 그 축복이 사라지면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욥을 시험대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욥이 자신이 받은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아니면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를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생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마음껏 공격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왜 고난을 당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욥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됩니다.
욥은 세 단계 고난을 겪었습니다. 첫째, 하루 만에 모든 소유를 상실했습니다. 단 하루 만에 자녀와 전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소와 나귀와 종들은 스바사람의 공격에 탈취 당했고, 양떼와 종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에 타 죽었습니다. 낙타와 종들은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 죽임 당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집이 무너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엄청난 고난의 태풍이 욥에게 불어 닥쳤습니다.
“이 말에 욥은 벌떡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어 버리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내 어머니의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떠날 때도 벌거벗고 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을 여호와께서 가져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 1:20~22).
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으로 이 고난을 통과했습니다. 그는 체념하지도, 운명에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억지로 순종한 것도 아닙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우리가 만약 욥이 당한 고난의 10분의 1만 당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의 시험에서 넘어졌을 것입니다. 욥은 역시 하나님이 자랑할 만한 믿음의 사람이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난 받으면 안 되는 사람”

둘째, 이번에는 욥 스스로를 공격합니다. 욥의 건강을 무너뜨렸습니다. 그의 몸에 악성 종기가 났습니다. 두 번째 고난에서 욥의 아내가 무너졌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욥의 그늘아래서 침묵하며 인내했지만 두 번째 시험에서는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번 시험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내에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군. 그래,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것만 받고 고난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입술로 죄짓지 않았습니다”(욥 2:10).
두 번째 고난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 대한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셋째, 이번 시험은 오랜 기간 동안 압박해오는 고통을 견뎌야했습니다.
여러분, 순간적인 고통과 고난은 견딜 수 있지만 지속적인 압박과 고통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 세 친구가 왔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욥을 위로하러 세 친구가 왔지만 그는 욥은 7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고난이 깊었습니다. 7일이 지나고 욥이 말하기 시작했는데 믿음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욥이 영혼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경건이 무너졌습니다. 사실 우리는 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려고 찾아왔지만 그들은 욥의 마음과 정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세 친구들의 말을 요약하면 인과응보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세 친구들은 인과응보 법칙을 통해 욥을 압박했습니다. 욥은 지지 않고 동일한 논리로 항변했습니다.
“나는 고난을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욥은 자신이 얼마나 순전하고, 정결하게 살았는지를 항변했습니다. 욥의 대표적인 말 한 구절을 읽으면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결단코 자네들이 옳다고 말하지 않겠네. 내가 죽을 때까지 나의 온전함을 포기하지 않겠네. 내가 나의 의로움을 굽히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마음이 나를 원망하지 않을 걸세”(욥 27:5~6).
자신은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 친구가 욥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 엘리후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나타난 엘리후라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엘리후는 세 친구들이 말하지 못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욥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분은 의로우시고,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욥의 모순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분이고,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믿는다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은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욥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씀도 엘리후가 말한 메시지와 동일한 맥락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의롭지 못한 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왜 나에게 고난을 주시냐고 묻고, 대들고, 항변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부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으면 그분이 의롭고, 선하신 분이라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이유

“”나는 주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 이루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뜻을 가린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말하고 너무 기이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을 내가 내뱉었습니다”(2~3절).
욥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모든 일을 하시고, 계획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무지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대로 이루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헤아릴 수 없는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낮에 능동적으로 삽니다. 보고, 판단하고, 계획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수동적으로 바뀝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도 창조하셨고, 어두움도 창조하셨습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낮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빛을 못 봐도 파괴되지만, 어둠 속에 들어가지 못해도 파괴됩니다. 조명을 인간이 발명한 획기적인 발명품이라 칭찬하고 상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인류가 하나님과 역행하게 된 계기입니다. 일해야 할 때 어둡게 만들고, 어둠속에서 쉬어야 할 때 불을 밝히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화려한 네온사인을 보면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어두움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낮을 통해 우리가 능동적으로 일하게 하고, 밤을 통해 하나님을 의존해야 되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 ‘아침이 되며 저녁이 되니’라고 말씀하지 않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밤을 먼저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하루를 계산할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정반대로 저녁부터 아침을 하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쉼으로부터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두움 속에서 잠을 잘 때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어두움에 들어가면 우리는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어둠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우리는 어두운 밤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어둠속에 들어감으로써 더 거룩해지고, 깨끗해지고, 정결해집니다. 어둠 속에서 회복되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두움을 피하지 말고, 어둠을 믿음으로, 인내로 통과해야 합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을 바라봐야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체험해야합니다.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욥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하나님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에 대해 지금까지 내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 내 눈으로 주를 보게 됐습니다”(5절).
욥이 예전과 다르게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물론 욥은 그전에도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욥의 신앙은 고난을 체험하기 전에는 귀로 듣는 신앙이었습니다. 여러분, 귀로 듣는 신앙에 머무르면 문제가 생깁니다. 귀로만 들었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고,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 신앙은 부인할 수 없고, 고백도 더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귀에 머무는 우리의 신앙을 눈으로 직접보고, 체험하는 신앙으로 변화시키 주십니다.
축복된 일, 긍정적인 일, 좋은 일, 우리가 원하는 일만 일어나고, 우리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귀로만 머물던 신앙이 눈으로 주의 영광을 보고 느끼는 신앙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한탄하며 티끌과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합니다”(6절).
욥의 친구들이 인과응보의 법칙을 적용하며 욥에게 “네가 무슨 잘못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것이니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빨리 찾아보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욥은 자신은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욥의 말은 인간적으로 보면 옳은 말이었습니다.
욥은 풍요로움 속에서도 그 풍요를 우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죄가 있다면 바로 자기 의였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깨끗하게, 경건하게, 올바르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영적 교만이나 자기 의라는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욥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욥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복을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욥의 그 마음

욥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6절에 나오는 욥의 고백입니다. 아마도 욥은 회복과 축복이 주어지지 않아도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한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결론을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켜주시고, 복 주신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늘 본문 1절부터 6절에 나타난 욥의 마음과 고백입니다. 욥은 무엇인가 기대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될 회개를 한 것입니다. 욥의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참된 회개는 아무리 심한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위대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이 겪은 고난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욥이 회개한 이후 사탄은 패배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영광 받으시고 욥도 고난을 통해서 승리했습니다. 욥은 우리에게 승리의 귀한 표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어둠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어두운 밤을 통해서 우리 안에 숨어있는 교만과 죄를 드러내고 더욱 정결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 더욱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신뢰하고 찬양하십시오.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십시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