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진노를 거두시는 하나님

이재훈 목사
‘작심삼일’은 사람의 결심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를 설명해주는 고사성어입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초’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부패하고, 연약한 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만나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해서 아론에게 자신들을 이끌어 줄 신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은 그 금송아지가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라고 여겼습니다. 금송아지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끔찍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건짐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생존해 왔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들려주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겠다고 여러 번 서약까지 했습니다. 그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송아지가 자신들을 인도할 신이라고 숭배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한 명령을 그토록 빨리 저버리고 스스로 송아지 모양의 틀에 우상을 부어 만들고는 경배하고 제물을 바치면서 ‘이스라엘아, 이것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신이다’라고 했다”(8절).
아담이 창조되고 난 뒤에 얼마나 빨리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노아가 방주에서 건짐을 받고 나서 얼마나 빨리 죄를 범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얼마나 빨리 우상을 섬겼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얼마나 빨리 세상으로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는 것에 익숙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습니까. 모세의 부재가 그 시작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40일 동안 시내산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머물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율법을 주시고, 성막의 청사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면 며칠이면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머물게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이 모세와 친밀함을 나누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검증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자신들을 이끌어줄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자신들을 이끌어줄 신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종교적 본성이 표출된 것입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마음속에 숨어있는 종교적 본성이 살아납니다. 위기에 처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 놓이면 초월적인 존재를 의지하는 심성이 발동합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죽음 앞에 서면 기도를 합니다. 평생 하나님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본성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불안해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인내하기보다 자신들의 때에 맞춰 움직였습니다.

우상숭배의 본질

우상숭배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이 신을 조종하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을 만들어 순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때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올바르게 인도해야 할 책임이 아론에게 있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자, 모세와 함께 백성들을 이끌던 리더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하나님보다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요구대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의 어리석음에 맞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한다고 훈계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대중들의 어리석은 요구를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백성들보다 더 큰 책임이 아론에게 있습니다, 나중에 모세가 내려와 호통을 칩니다. 그런데 아론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아론은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이 백성들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쉽게 악을 행하는지 말입니다. 그들이 내게 ‘우리 앞서서 갈 신을 만들어 내어라.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그 사람 모세가 어떻게 됐는지 알 게 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말했지요. ‘금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다 빼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내게 금을 가져왔고 내가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넣었더니 이 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22~24절).
아론의 대답이 기막힙니다. 자기반성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일이 백성들이 악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백성들이 얼마나 악한 줄 아냐고 말합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들이 자신에게 금을 가져왔고 그것을 불 속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설명을 해도 어떻게 이렇게 설명합니까. 불 속에 금을 던지면 송아지가 튀어나옵니까. 당황한 것이 분명합니다. 얼마나 무책임한지 모릅니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변명과 도피, 회피로 가득한 지도자입니다, 가끔 뉴스에서 이런 비슷한 말을 듣습니다. 금을 불 속에 넣었더니 금송아지가 튀어 나왔다고 하는 것처럼 이해되지 않는 해명들이 참 많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보셨습니다. 진노하시고, 백성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백성들을 보니 참으로 목이 곧은 백성들이다. 그러니 너는 이제 나를 두고 가거라. 저들 때문에 내 진노가 부글부글 끓는구나. 내가 저들을 진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9~10절).
이 사건은 하나님이 백성들을 진멸하실 수밖에 없는 죄입니다. 십계명의 1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계명을 어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송아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이것은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2계명도 어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는 마치 출애굽기 24장에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세와 아론과 그 지도자들이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모습 그대로 금송아지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비슷하게 드리고, 사이비 유사종교를 만들어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1,2계명을 어겼다는 것은 나머지 8계명도 당연히 어긴다는 것입니다. 도미노현상처럼 발생합니다. 1계명이 무너지면 2계명은 금방 무너집니다. 2계명이 무너지면 나머지 계명도 무너집니다. 그 일로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를 끊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의 청사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의 청사진을 받고 있는 동안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막과 인간들이 만든 금송아지가 대조를 이룹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집이고, 금송아지는 사람을 위해 만든 우상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작품이고, 금송아지는 인간들의 작품입니다. 성막은 여러 재료를 가지고 세심한 기술과 공정을 통해서 만드는데, 금송아지는 금이라는 재료 한 가지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만듭니다. 성막은 자발적으로 드린 예물로 만들지만, 금송아지는 아론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낸 재물로 만들었습니다.

은혜의 문을 발견한 모세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여기서 진멸해 버리고 새로운 민족을 시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새로운 민족을 시작하듯이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민족을 시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기지만, 모세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골치 아픈 백성들을 멸하고, 모세를 아브라함의 위치에 두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이미 형성된 민족을 이끄는 것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모세가 지도력을 인정받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런 모세가 아브라함과 같이 혈통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분명 기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하나님 여호와께 빌며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왜 주의 백성들 때문에 노여워하십니까? 그들은 주께서 큰 능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사람들이 아닙니까?’ 왜 이집트 사람들이 ‘그가 그들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쓸어버릴 생각으로 끌고 나갔구나’하게 하시겠습니까? 주의 무서운 진노를 돌이키시고 주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께서 친히 주를 두고 그들에게 ‘내가 네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니 이것이 그들의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이다’라고 맹세하시지 않으셨습니까?”(11~13절).
어떻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놀라운 기도입니다. 모세의 태도는 불순종처럼 보이지만 순종입니다. 여러분, 순종처럼 보이는 불순종이 있고, 불순종처럼 보이는 순종이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세 가지 근거를 통해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큰 능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사람들이 아닙니까?”(11절).
모세는 하나님의 강한 결단 속에도 은혜의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진노하고 계신데 은혜의 문을 어디서 찾아야합니까. 가만히 본문을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이 모세와 의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고, 너로 새로운 민족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계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으니 진멸하면 되는데 모세와 의논을 했다는 것은 그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획을 말씀하시고, 생각을 물어보시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은혜의 문을 열려 있다는 가능성을 봤을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찾아와서 크게 화를 냈다면 변할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모세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실행하면 됩니다. 모세는 여기서 은혜의 문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너는 이제 나를 두고 가거라 했습니다”(10절).
이 말씀을 쉽게 풀이하면 ‘말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흥분하면 말리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말려달라는 것입니다. 말리면 안 되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앞문은 막으셨는데 뒷문은 열어 두신 것 같습니다.
어느 주석가는 “내가 하는 대로 두라”는 말씀을 중보기도에 대한 초대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결정이라도 그 속에 작은 틈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과 대화하셨다는 것, 의견을 구하셨다는 것, 흥분하셨고, 진노하셨지만 ‘나를 두고 가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중보기도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한 것은 불충실이 아니라 진정한 충성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함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것이 중보기도의 힘
둘째,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에 호소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운명보다 하나님의 영광에 더 초점을 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서 진멸되면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보기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기도제목을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주기도문에서도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이유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운명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
셋째, 하나님의 약속에 호소했습니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에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호소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려는 하나님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 약속의 신실함을 붙잡고 호소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움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던 마음을 접으셨습니다”(14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킨 것은 모세의 말을 듣고 뉘우쳤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회개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한대로 진멸하셔도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사람 의견을 존중해서 문제를 풀어가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미래를 열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진노를 거두시는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진노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중보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운명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대화하면서, 마음을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중보기도의 특권을 누리고, 활용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 역사를 바꾸고, 민족의 미래를 바꾸고, 열방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마땅히 내려 할 하나님의 진노가 거둬지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