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유대인 랍비 해롤드 쿠시너는 여러 종교에서 잠들기 전에 드리는 기도문을 연구한 결과, 모든 기도문에서 공통적으로 귀결되는 한 가지 고백을 발견하였다. “하나님, 내가 이 밤에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이 전적으로 내게 기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전능하신 분이 이 세상을 주재하고 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의 통치와 주권을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이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무릎 꿇어 경외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그 이름은 나와 이 우주만물을 만들고 이끌어 나가시는 분의 이름이시다. 잠자는 영혼을 일깨워 그 분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는 ‘궁극적인 피조물 의식’을 일깨워 주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곳에 자유와 생명이 있고, 하늘, 구름, 일출, 바람, 숲, 꽃, 강물… 늘 마주하는 얼굴이지만 매일매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는 가운데 그 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분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바로 광야로 나아가 40일 동안 그 분 앞으로 나아가셨다(눅4:1,2). 열두제자를 뽑기 전에도(눅6:12),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기 전에도(눅9:18),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변모 전에도(눅9:28),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도(눅11:1),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서도 겟세마네 산에 올라 밤을 새우며 그 분 앞으로 나아가셨다(눅22:39~41). 

 

▼ 언제 어디서나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름, 그래서 신비가 가득한 이름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 바로 그 이름이다. 그러나 경건의 모양은 있어도 능력이 없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에 의해 이용될 때 그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새벽빛으로 하루를 열며 그 분 앞으로 나아가 간구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