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김소리 목사의 신앙에세이

 

크리스천과 위로

 

한 여대생이 버스 정류장에서 전화를 받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며 “정말요?”라고 울린다. 감격스러웠는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전화기에 계속 외친다. 그리고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저, 합격했어요! 정말로 가고 싶었던 회사에 합격했어요!” 그러자 옆에 사람들이 축하해준다. “어머 축하해요. 정말 잘 됐네요. 앞으로 더 잘 될거에요” 그 여학생을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진심으로 안아주며 축하해 주었다.
이것은 실험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지를 실험한 것이다. 이제까지 본 적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내 여동생이 취업한 것처럼, 내 자녀가 취업한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복해주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공감하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셨다. 공감(共感).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공감이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가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었을 때 그가 느꼈을 상황을 내가 직접 똑같이 체험하는 것이다.
공감의 가장 대표적인 행동이 위로다. 그가 느꼈을 마음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껴주는 것이다. 그 아픔과 슬픔에서 다시 일어서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것, 그것이 ‘위로’다.
성경에 ‘위로’란 뜻을 가진 이름이 있다. ‘나훔’이다. 나훔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은 아니다. 그가 ‘엘고스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위로’라는 이름을 가진 나훔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로자가 되어 주신다는 메시지다. 성경 나훔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위해 용사가 되어 주셔서 고통을 주는 앗시리아를 혼내주시겠다는 ‘위로’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훔 1:7)
선하시고 좋으신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산성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모른체하지 않으신다는 이 말씀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또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나훔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리셨고, 실제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하셨다.
공감과 위로의 시작은 대화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위로의 시작이 된다. 옛날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예배시간이 아닌데 한 부인이 교회에 들어와 앉자마자 통곡하기 시작했다. 울음이 멈추지 않자, 당시 교회를 지도하던 암브로스라는 유명한 감독이 다가가 물었다. “부인,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우시는지요?” 부인이 말했다. “감독님, 제 아들이 이단에 빠졌어요” 그때 암브로스 감독이 부인에게 역사에 남을 위대한 말을 한 마디 남겼다. “걱정마세요, 부인. 기도하는 자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 부인이 바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다. 어거스틴은 다시 돌아왔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는 거목이 되었다.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한 여인의 고통을 들어주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를 포기하지 말라고 위로하였다. 또 그 여인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위로로 아들을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주셨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좋은 소식을 함께 기뻐해 줄 만큼 우리에게 공감의 씨앗을 주셨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공감하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길이다.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자.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자.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자. 그 위로를 가지고 위로가 필요한 가까운 사람에게 가자.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아 주저앉고 싶은 사람들, 이제는 흘릴 눈물조차 메말라 버려 마음이 갈라지고 황폐한 사람들,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된 사람들, 잠깐이라도 기댈 곳이 없어 그 서러움이 아픔이 된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산성이 되어 주신다는 위로를 전하자. 당신은 ‘나훔’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위로의 통로다.
/김소리 목사(평택 온누리교회)

김소리 (5)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