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안광국 목사의 신앙에세이 3

 

영혼의 바이탈 사인(Vital Signs)

 

바이탈 사인이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살아 있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혈압, 체온, 맥박, 호흡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살아있다고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체온이나 호흡이 없으면 죽은 사람이다. 반대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호흡이나 맥박이 있으면 살아있는 사람이다. 이처럼 바이탈 사인은 살아있음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요한계시록 3:1)
사데교회는 사도 바울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시아의 7개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였다. 역사적으로 사데는 고대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상업적으로 번창한 도시였다. 염직공업과 양털 염색, 금모래 등이 유명해 사치와 부의 상징이었다. 그런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죽었다’라고 사망선고를 내리셨다. 영적인 바이탈 사인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재정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많은 교인이 있습니다”라고 사데교회는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바이탈 사인이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영적인 바이탈 사인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선포되는 말씀인 ‘케리그마(kerygma)’, 이웃을 향한 봉사인 ‘디아코니아(diakonia)’, 성도간의 교제인 ‘코이노니아(koinonia)’, 양육을 의미하는 ‘디다케6(didake)’다. 이 네 가지는 마치 호흡, 체온, 맥박, 혈압처럼 교회의 영적인 바이탈 사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 중 하나는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더 왕성한 복음의 증거가 나타났던 초대교회가 선교와 전도를 영적인 바이탈 사인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선포된 말씀만 있었을 뿐 증거된 말씀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전도를 강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듣는 것이 곧바로 증거하는 삶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듣는 것과 전하는 것이 하나였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처럼 선교나 전도를 일부러 강조해야 하는 신앙이 아닌, 듣는 말씀은 곧 증거해야 하는 말씀으로 그들의 삶 자체가 전도였기 때문에 굳이 전도를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 영성사>라는 책에서 브레들리 홀트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할 말씀으로 여기지 말고, 실천해야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야 한다”며 우리의 듣는 것에만 만족하는 신앙의 병든 모습을 비판하고 있따.
어느 날 마가복음 8장 말씀을 큐티하다가 벳세다에서 한 눈먼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와 고치시는 장면을 묵상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눈먼 사람의 두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면서 이렇게 물으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그 사람이 말한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이 걸어 다닌다는 것은 이제 막 시력이 회복되어 눈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마치 ‘사람들이 너무나 생명력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마치 나무 막대기와도 같습니다’라는 말처럼 들렸다. 깜짝 놀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나의 생명력 없는 삶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의 삶 속에 성령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소서”
봄이 되어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이 계절이다.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던 나무와 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은 듯 보였으나 결코 죽은 것이 아님을 묵상하는 계절이다. 더불어 나 자신에게 “살아있는가?”라고 물어본다. 내 인생의 나무에도 새싹이 계속 돋아나고 있는지, 꽃이 피고 있는지 묵상해본다. 내 신앙의 어떤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의 살아있음을 증명할 것인가? 목사로서 말씀도 선포하고, 봉사도 하고 교제도 하고, 양육도 하지만, 마른 막대기처럼 생명력 없이 분주히 돌아다니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본다. 오늘따라 죽음같이 추운 겨울을 견디고 길가에 꽃을 피워낸 들풀의 생명력이 너무나 위대하게 느껴진다.
/안광국 목사(남양주 온누리교회)

안광국 목사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