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Talk Talk 열왕기 7

 

여로보암의 길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은 후 왕국이 분열하면서 생긴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다(재위기간 주전 922~901년). 여로보암은 북쪽 이스라엘 대표 지파인 에브라임 출신으로 과부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씩씩하게 잘 자랐다. 젊은 나이에 ‘큰 용사’라고 불릴 만큼 리더십이 뛰어났고 부지런했다. 그래서 솔로몬이 밀로성을 건축할 때 책임자로 세웠다. 그러나 얼마 후 솔로몬은 그를 죽이려고 했다. 왕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누군가? 부국강병을 이룬 왕이다. 그런 솔로몬을 대적한다? 도대체 뭘 믿고 그랬을까? 사연인즉 이렇다.
어느 날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를 길에서 만났는데, 그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 솔로몬의 나라가 찢겨질 것이고, 열 개 지파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왜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택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였던 왕국이 두 나라로 갈라졌는지에 대해서 아히야는 분명히 말했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과 같이 행하지 않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이 주신 법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분명히 말한다. 다윗과 같은 왕이 되라고. 그러면 하나님이 네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라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전에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있어서(삼하7장) 차마 그를 버릴 수는 없으셨다. 대신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택해 다윗과 같은 왕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셨다. 여로보암은 이 계시를 믿고 솔로몬에게 반기를 든 것 같다. 게다가 솔로몬이 부과한 강제 노동과 무거운 세금으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에 불평이 쌓여있었다. 특히 북쪽 지파들의 불평이 심했는데,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했을 때 세겜에서 강제 노동과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바로 이들이다(‘온 이스라엘’로 표현됨). 르호보암이 이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더 강압적 정책을 쓸 것이라고 하자, 결국 이들은 다윗의 후손들 즉 유다 지파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옹립한다. 아히야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여로보암이 다윗처럼 행하느냐의 여부였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다윗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한 첫 번째 일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비록 정치적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었지만, 북이스라엘 사람들 마음에는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다. 율법에 따라 일 년에 세 차례 성인 남자들은 반드시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만약 이대로 둔다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결집시키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며, 또 예루살렘 성전에 내려간 사람들이 르호보암의 영향을 받아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여로보암이 생각해낸 것은 북이스라엘만의 성소였다. 굳이 예루살렘 성전에 갈 필요없이 여기서 제사를 드리면 된다! 그는 금송아지를 두 개 만들어 북이스라엘의 남쪽에 있는 ‘벧엘’과 북쪽에 있는 ‘단’에 두었다. 그리고는 “이것이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이라고 부르면서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한다. 약 500년 전 아론의 주관 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적이 있었다. 하필 왜 송아지인가에 대해 이집트에서 숭배하던 신이라는 설, 가나안 사람들이 섬긴 바알종교의 표상이라는 설 등이 있다. 출처야 어찌되었던 간에 이방종교의 요소가 가미된 것이다. 특히 바알종교는 풍요와 다산의 종교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송아지를 출애굽의 신이라고 말한 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철저히 능멸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끓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시고 이들을 진멸시키려고 하셨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이 다윗처럼 되기를 원하셨건만 여로보암은 철저히 이를 배신했다. 자신의 통치를 강화시키기 위해서였다. 또한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 외에도 다른 곳에 산당들을 지었다. 엘리야 시대의 갈멜산, 길갈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장소다. 뿐만 아니었다. 그는 레위인만이 할 수 있는 제사장직에 일반 백성을 임명하기도 했으며, 절기 날짜를 마음대로 바꿨다.
하나님은 이에 진노하셨다. 여로보암에 대한 열왕기 기록을 보라. 그의 가증스런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13, 14장). 하나님의 분노가 서려있다. 그만큼 그의 죄는 막중했다. 여로보암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아예 이스라엘을 버리셨다. 주전 722년 여로보암이 왕이 된지 200년 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간다. 여로보암이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기 때문이다(왕상 14:16). 열왕기 저자는 여로보암 이후 북이스라엘의 왕 18명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로 평가한다(왕상 15:34, 16:2·19·26 등). ‘여로보암의 길’은 우상숭배의 패역한 길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늘 내가 걷는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
/최원준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1. 최원준(강동담당)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