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_효(孝)
예수님은 효자셨다
효(孝), 하나님 나라 만드는 일에 버금가는 가치
인간관계 첫 계명 … 효가 무너지면 윤리가 무너진다
지난 1월, 미국에서 단돈 200달러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미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패륜범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이유는 이 부자(父子)가 미국사회 최상류층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재력가집안 이었기 때문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토머스 길버트 주니어(아들)는 유명 사립대를 졸업했지만 별다른 직업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매달 집세 2,400달러와 생활비 600달러를 받았다. 아들의 허랑방탕함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용돈을 400달러로 줄이겠다고 했고, 이에 격분한 아들이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다. 단돈 200달러 때문에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어르신보호전문기관 두 곳에서 지난해 노인학대 실태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충격적이다. 자녀에 의한 학대가 무려 62.1%나 됐다. 아들이 40.9%, 배우자 17%, 딸 15.4%, 기관 7.3%, 며느리 5.8% 순이었다.
효(孝)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이다. 효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성경에서 말하는 효의 의미가 무엇이고,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효를 실천해야 되는지를 되새겨보자.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아아 애달프다 부모님이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고 수고하시었다 그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넓은 하늘도 끝이 없네”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시경(詩經)에 쓰여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다. 그만큼 효를 강조하는 나라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나라는 인간교육을 강조해왔다. 인간교육의 핵심이 바로 효(孝)다. 효는 한국인의 윤리와 도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효 사상을 논하는 데 유교적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유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사서삼경’(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주역)에는 효에 대한 비중이 가장 많다. 효는 유교 도덕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삼강오륜(父爲子綱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 君爲臣綱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 夫爲婦綱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의 처음도 효다.
공자도 효를 강조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효경(孝經)을 통해 공자와 제자들의 효에 대한 사상을 집대성했다. “효는 덕의 근본이며 가르침이 생겨나는 근본이다.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이것을 훼상시키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다…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다음으로 임금을 섬기고, 끝으로 입신하는 것이다”, “무릇 효는 하늘의 법도이며 땅의 의리이며, 백성의 행할 길이다”
맹자도 효를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가르쳤다. “섬기는 일 중에서 무엇이 가장 큰 것인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큼이 된다.”, “인(仁)의 실제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며, 의(義)의 실제는 형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교에서의 효는 모든 행위의 근본이며, 인을 실천하는 기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교에서의 효는 부모에 대한 존경을 넘어, 선조와의 관계, 자손과 일족과의 관계까지 포함하고 있다. 즉, ‘선조…증조-조부모-부모-나-아들-손자…후손’이라는 개념이다. 그래서 조상의 제사, 부모 공경, 자손을 낳는 일 등이 모두 효의 개념에 포함된다. 효를 행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조상께 제사지냄으로써 조상을 재생(再生)시키며, 자신이 언젠가 죽음을 맞겠지만 자손과 일족에 의해 이 세상에 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생명은 아버지의 생명이고, 조부의 생명이고, 나아가서 머나먼 조상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백 년 전에도 살아 있었다는 것이 된다. 쉽게 말해 효를 다한다는 것은 나의 생명이 영원하다는 가능성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효(孝)
기독교에서 말하는 효는 무엇일까. 제사문제를 두고 일부 불신자들은 기독교를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종교’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성경은 강력하게 부모공경을 명령하고 있다. 그만큼 효를 강조한다.
구약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여길 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 중 제5계명이 효를 강조한다. 제5계명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계명들 중 첫 번째 계명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절대로 살인할 수 없고, 간음할 수 없고, 도둑질할 수 없고, 이웃의 것을 탐낼 수 없다.
부모를 치는 자나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명하고 있으며(출 21:15, 레 20:9),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아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신 27:16). 잠언에는 부모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격언이 반복되어 있다(13:22, 15:20, 30:17 등). 셈과 야벳, 요셉, 룻 등을 통해 효를 행함이 하나님의 뜻이며, 효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신약에서도 효에 대한 강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델로 삼을만한 효자셨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목수로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을 도와드리며 효를 실천하셨다(마 13:55, 막 6:3). 가나안 혼인잔치에서는 사역을 시작하는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말에 순종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이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순간에도 마리아의 노후를 제자 요한에게 맡길 정도로 제5계명에 순종하셨다(요 19:26~27).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말씀에 아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십자가 고통을 피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원망도 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하시고(마 26:36~39) 인간구원의 위대한 사역을 이루셨다.
바울도 여러 서신을 통해 효를 강조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바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양육으로서의 효’를 강조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부모가 자녀에 대한 권위와 우위를 앞세워 감정적으로 그들을 노엽게 하는 것은 자녀들로 하여금 첫 계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하고 훈계해 자녀들이 제5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 밖에도 효에 대한 권면(딤전 5:4), 불효에 대한 경고(딤전 6:1~3, 딤후 3:2)도 있다. 직접적인 표현은 아닐지라도 부모에 대한 효를 전제하고 있는 구절(딤전 5:1~2, 히 12:9)도 있다. 성경이 효를 배격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다.
기독교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종교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성경 곳곳에 효를 강조하는 교훈들이 많다. 이는 성경이 효를 강조하고, 부모공경을 인간관계의 으뜸 계명으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중에 부모공경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들이 있다. 마치 효를 무시하고, 경시하는 것 같은 표현들을 살펴보자.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1~62)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예수를 따르기 전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겠다는 것조차 거부하셨다. 열왕기상 19장 19절~21절에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기 전 부모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엘리사의 요청에 엘리야는 그렇게 하도록 수락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했다. 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지체도 허락하지 않으셨다(마 8:21~22).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가족간의 불화를 일으키기 위해 왔다고도 말씀하셨다. 자신을 따르려는 자는 부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복음을 위해 부모까지도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막 10:29~30). 육신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도 했다(마 23:9).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직전에도 육신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제자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의 사역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긴급하기 때문에 대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제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그 대가를 설명하는 것이다(눅 14:26~27).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사역이 중요하고 시급하기 때문에 제자들이 그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모 뿐 아니라 자기 목숨도 버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절대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수사학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일의 우선성과 긴급성을 강조하기 위한 비교대상을 부모에 대한 태도로 삼았다. 이는 예수님이 효를 경시한 것이 아니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공경을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일에 버금가는 가치를 여겼다는 반증이다.
요즘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사회윤리도 무너지고 있다. 상상도 못할 패륜범죄가 날마다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다. 왜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인간교육의 시작과 끝인 효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효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 전통적인 효사상과 유교적 효사상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효를 무시하거나 경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효의 모범을 보이셨다.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를 공경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이유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려고 애쓴다.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예수님은 효자셨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 그리고 이웃을 섬겨야 한다.
효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윤리요, 도덕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관계 첫 계명으로 효를 명령하셨다. 효가 무너지면 인간관계가 무너진다. 인간관계가 무너지면 윤리가 무너지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예수처럼 살라는 명령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효자셨다.
_함께 읽으면 좋은 책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습니다”
<어머니, 부치지 못한 1000통의 감사편지>
박점식 저/올림 출판사/13,000원
홀어머니 밑에서 유복자로 자란 흑산도 섬마을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중학교 때부터 술과 담배를 입에 댔다. 고등학교 진학을 꿈꾸기 어려운 형편에 공부는 해서 뭐하냐는 마음이 가득했다. 홀어머니는 몸이 부서져라 일해 아들을 뭍의 고등학교에 보냈다. 방학 때 섬에 돌아온 아들이 친구들과 이웃집 염소를 잡아먹고 육지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하숙방을 찾아와 책을 모두 불사르며 말했다.
“내가 경우 바르게 살라고 했냐, 안했냐? 사람이 나쁜 짓을 험시로 공부는 해서 뭣하냐!”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막일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열심히 일해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가족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가장, 직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상사가 됐다.
그때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쉰을 훌쩍 넘은 소년은 치매 걸린 어머니에게 1000통의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부치지 못한 1000통의 감사편지를 책으로 엮었다.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어머니는 사랑이었네’, ‘어머니는 찬밥을 드셔도 되는 줄 알았다’, ‘모든 것을 주신 어머니’ 등 제목만으로도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이 듬뿍 묻어 있다.
그 소년은 중학교 2학년 때 흑산도 무장공비 사건이 터진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포격 소리가 요란했다. 어머니는 이불을 더 꺼내서 어린 아들에게 덮어주시고 자신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셨다”
목숨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신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고백하자.
“제가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