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최성석 목사의 신앙에세이 2

 

“나는 전하기만 하면 된다”

 

나에게는 어릴적부터 영적인 멘토가 있다. 바로 우리 어머니다. 나는 4형제 중 막내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형님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모습과 말씀을 나에게 많이 보여주시고, 해주셨다. 어머니는 집 근처 교회나 유명 목사의 부흥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주저 없이 나를 데리고 가셨다. 당시 부흥회는 지금의 부흥회와 많이 달랐다. 2박3일이나 3박4일을 교회나 학교 운동장 등에서 새벽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말씀을 듣고 부르짖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4형제를 모두 데리고(당시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가셨다. 그곳에서 첫째 형에게 기타를 치게 하고, 둘째 형과 셋째 형에게는 찬양을 하라고 하셨다. 나와 당신은 전도지를 나눠줬다. 그것이 나의 첫 노방전도였다. 조금 황당했지만 형님들도 나도 순종했다.
그날 이후 노방전도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중학교 3학년 초반까지 통기타를 치면서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강남고속터미널 경부선과 호남선을 오가며 전도찬양을 했다. 나는 기타를 치고, 어머니는 찬양을 하면서 전도지를 나눠줬다. 어떤 날은 교회 친구 두세 명을 불러 함께 기타치고, 찬양하며 전도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든 사건이 되었다. 그 의문은 바로 내가 전도한 사람들이 과연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전도에 대한 회의가 들었던 것이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질풍노도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결국 노방전도를 중단했다.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때를 회상하면 노방전도의 열매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 같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했었더라면 열매를 맺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래도 그때의 일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치부하던 즈음, 누군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영상은 호주 조지 스트릿에서 복음을 전한 어느 무명 전도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복음을 듣고 회심한 후 고향 시드니로 돌아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명씩 40년 동안 복음을 전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전한 말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짧은 메시지였다.
“당신은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는 평생 복음을 전했다. 열매 없는 열심에 낙심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영국의 유명 부흥강사가 찾아와 전 세계를 다니며 들은 간증을 들려줬다. 호주 시드니의 조지 스트릿에서 전해들은 메시지에 어떤 이는 목사로, 어떤 이는 장로로, 어떤 이는 힌두교도에서 선교사가 되었다는 간증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한참을 울었다. 열매 없음에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했었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낙담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전하는 사람 없이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 듣게 하신 이가 알아서 하실 것이니 나는 전하기만 하면 된다.
/최성석 목사(이수공동체)

최성석 목사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