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준 목사의 Talk Talk 열왕기 10
무심코 쏜 화살에 죽은 왕
왕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열왕기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선지자다. 때론 ‘하나님의 사람’(12:22, 13:1)으로도 불린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와 엘리사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솔로몬 즉위 1등 공신 선지자 나단을 비롯해 유명, 무명의 선지자들이 다수 등장한다. 우리말 선지자(先知者)는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고, 예언자(豫言者) 역시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해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람이며, 그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다. 그 말씀 가운데 미래를 미리 말해주는 예언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말씀을 받는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때로는 비유적 행동으로 전하는 사람이 선지자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선지자들과 관련이 깊은 왕이 있다면 바로 아합 왕이다. 아합 왕은 열왕기상 17~22장에 나오는데, 17~19장에서는 엘리야가 전면에 등장하고 그는 조연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20~22장에서는 아합 왕이 주인공이다. 엘리야는 21장 나봇의 포도원 때 잠시 나타날뿐이다. 20장과 22장에는 엘리야가 아닌 다른 선지자들이 등장한다. 아람(앗수르) 왕 벤 하닷이 큰 군대를 이끌고 와서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했을 때 ‘무명의 한 선지자’가 아합을 찾아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전한다. 아합은 이 선지자의 말을 믿고 나가 싸워 승리한다. 이듬해 봄 벤 하닷이 다시 쳐들어왔을때도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가 받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아합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말씀대로 이뤄졌다. 그러나 승리에 취한 아합은 벤 하닷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른다. 벤 하닷은 하나님이 죽이기로 한 사람이다(왕상 20:42). 따라서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요, 헛된 거드름만 피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이 점을 지적한다. 벤 하닷을 살려주었으니 네 생명으로 대신하겠다는 심판 선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듣고도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왕은 화가 나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왕궁으로 갔습니다”(20:43). 영어성경 NRSV는 “화가 나고 부루퉁해져서”(resentful and sullen)로 번역했다.
이런 아합의 모습은 이어지는 21장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아합 왕은 나봇에게서 포도원을 사려고 했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그는 화가 나서 자기 침대에 누워 먹지도 않았다(21:4). 앞서 선지자의 심판 메시지를 들었을때와 동일한 반응이다. 화를 내며 삐친 것이다. 얼마후 자초지종을 알게 된 이세벨은 음모를 꾸며 나봇을 죽인다. 그리고 아합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러자 아합은 왜 나봇이 죽었는지에 대해 묻기는커녕 즉시 일어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간다.
바로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한다(21:17).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가 그의 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이 이세벨의 집안을 멸할 것이며, 이세벨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을지를 전했다. 아합은 엘리야가 전한 ‘이 모든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까지 했다. 앞서 화를 낸 것과는 대조된다. 그러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아합이 당신의 말씀을 듣고 겸비했기 때문에 그에게 내리려는 재앙을 그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릴 것이라는 집행유예 선언이었다. 하나님은 아합과 같이 좀처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화를 내며 삐치는 사람도 당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기회를 주신다. 만약 아합의 인생이 이렇게 끝이 났더라면, 죽을 때까지 겸비했더라면 아마 아합의 인생, 아니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열왕기는 우리에게 아합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람 군대와 이스라엘이 다시 싸움을 벌이게 됐다. 이번에는 남 유다의 여호사밧과 북 이스라엘의 아합이 연합하여 먼저 아람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때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22:5) 물어보기로 한다. 이에 아합은 선지자 약 400명을 모아 그들에게 선제공격 여부를 묻는다. 이에 400여 명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하시라고, 주님이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외에 미가야라는 선지자는 패배를, 나아가 죽음을 예언했다. 오직 한 사람 미가야의 예언이 진정한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아합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한다. 오히려 미가야를 감옥에 가둔다. 그렇지만 전쟁터에 나가는 아합의 마음은 찜찜했다. 미가야의 말이 사실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변장을 한다. 대신 여호사밧이 아합의 왕복을 입고 나갔다. 처음에는 아람 군대가 속았다. 아람 왕이 병거 지휘관 32명에게 아합 왕에게만 집중하도록 명령한다. 지휘관들은 아합의 옷을 입은 여호사밧을 공격하려다 아합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 아합을 놓쳤다고 생각한 순간, 어떤 아람 군인이 ‘무심코’ 활을 당긴다. 영어성경 NRSV는 unknowingly(자기도 모르게)로, NIV는 at random(아무렇게나)로 번역했다. 무심코 당긴 활에 날아간 화살은 아무도 눈치채지 모를 것 같았던 변장한 아합의 갑옷 솔기를 뚫었다. 도대체 이럴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하나님의 예정된 심판이기에 100% 명중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당한 아합은 자기의 병거를 모는 부하에게 일러 군중으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과도한 출혈로 죽고 만다. 박철현 교수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연히 당겨졌지만 이미 운명이 정해진 아합의 갑옷을 찾아가 꿰뚫은 화살은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보고자 한 그의 무모함에 대한 하나님의 조롱이나 마찬가지다. 활을 쏜 자에게는 우연한 사건이었으나 아합의 운명에는 미리 예정된 필연으로 작용한 것이다”
끝끝내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자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인간은 없다. 하나님의 심판은 잔꾀로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죄를 통회할 때만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진다. 무심코 쏜 화살을 통해서도 말씀은 이뤄진다.
/최원준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