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최성석 목사의 신앙에세이 3

 

2012년 5월 13일 주일 밤 9시 예배

 

내가 온누리교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9년 봄이었다. 온누리교회를 알았다기보다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을 알았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형들을 따라온누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문화충격이 컸다.
내가 받은 첫 번째 충격은 교회로 향하는 버스에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이었다. 어디에서 모였는지 모를 사람들이 모두 한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그곳이 바로 온누리교회였다. 두 번째 충격은 앉을 자리도 없이 꽉 찬 예배당이었다. 세 번째 충격은 찬양 중에 손을 들고, 갑자기 일어서고, 부둥켜안고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찬송가 외에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도 놀라웠다. 네 번째 충격은 밴드였다. 내가 다녔던 교회에는 오르간과 피아노, 통기타 외에 다른 악기가 없었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악기들로 연주하고 있었다. 여섯 번째 충격은 엄청난 크기의 스크린이었다. 그 스크린에 OHP필름을 이용해 가사를 띄웠다. 당시 내가 다니는 교회는 종이 괘도에 가사를 적어 보여주거나 찬송가만 불렀다. 그때 받은 충격이 계기가 되어 매주 목요일마다 온누리교회를 찾았다. 주일에는 늦은 시간까지 혼자 기타를 치면서 찬양을 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공부하고, 잠을 잤다. 그 생활을 반복했다. 교회청소를 돕기도 했다.
1991년 겨울로 기억한다. 매주 목요일 찬양집회를 참석하며 은혜를 누리고 있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서빙고 온누리교회 예배당에 올라가 찬양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하나님은 참 재미있으신 분이다. 예상하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의 꿈을 실현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기간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를 떠나 있었던 적이 있었다. 찬양도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다.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보다 세상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었다. 나조차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주님은 그런 나를 받아주셨다. 잊지 않으셨고, 포기하지 않으셨다. 기적 같이 당신의 종의 자리로 부르셨다.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했고, 돌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아 더 멀리 도망치려했었다. 주님은 그런 나를 붙드셨다. 그 엄청난 은혜를 감당할 길이 없어 참 많이 울었다.
2012년 5월 13일 주일 밤 9시 예배. 주님이 나의 꿈을 실현시켜주신 날이다. 그날 20여 년 전 했던 기도가 생각났다.
“저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저는 예배인도자가 서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싱어들이 있는 자리도 제게는 버겁습니다. 부끄럽지만 저기 단 위에 있는 콰이어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분들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에서 주님을 노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콰이어 뿐 아니라 싱어와 예배인도자의 자리까지 섬길 수 있게 하셨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이신지.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우리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후하게 주시는 분이시다. 기도응답이 더디다고 생각될 때마다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러면 내가 받을 수 있는 응답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응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마다 내려주시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꿈을 주신 주님은 우리가 좌절하고 절망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기억하고, 인내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꿈을 직접 이루어주신다.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 55:9).

/최성석 목사(이수공동체)

최성석 목사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