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목사의 신앙에세이 1
성도와 교회, 목사의 최선
2001년 9월 11일 인명피해 약 3,500명, 경제적 손실 약 65조 4300억 원,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정신적 피해를 불러일으킨 9.11테러가 발생했다. 정서적 공황에 빠진 시민들 앞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테러 발생 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흉물스러운 잔해 사이를 누비며 구조 활동을 벌이는 소방대원들과 어깨동무를 한 그는 전 국민을 향해 이렇게 연설했다.
“오늘 밤 슬픔에 잠긴 모든 사람들과, 세상이 산산조각으로 깨졌다고 느끼는 모든 어린이들과, 안전과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국민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내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걸어간다 해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주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는 성경 말씀처럼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권능을 가진 주님이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실 것을 저 역시 기도할 것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율과 비장함, 위로와 용기, 치유가 담긴 한 나라의 지도자의 연설이 온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2015년 6월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감리교회에서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9명의 성도가 사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족들이 범인을 용서하기로 했다.
지난 6월 26일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인 클렌멘타 핑크니 목사의 장례식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는 추모연설에서 “선량함이라는 은총을 발견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은총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 잠시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의 끝자락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단상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더니 장례식에 참석한 6,000명이 동시에 찬양을 불렀다. 이 장면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되었다. 미국 언론들은 이 장면을 두고 ‘오바마의 대통령 재직 기간 중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한 서사시’라고 보도했다.
부시나 오바마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잠시 접어두겠다. 그러나 위의 일화를 접하면서 목사는 어떤 의미인가를 떠올려 봤다. 죽음의 자리 한 가운데 생명의 웅크림이 있다. 혐오가 빚어낸 살상의 현장 한 가운데 은총의 기다림이 있다. 마치 단단한 과일 속에 묻혀 있는 씨앗처럼, 죽음의 현장은 놀랍게도 생명을 바라보는 자리이다. 인간의 한계 선상은 전능하신 생명의 창조주를 바라볼 수 있는 접점이다. 그 접점의 자리에서 땅의 불행을 바라보며 함께 울되 영원한 은총을 기대하게 만드는 거대한 서사를 노래하는 자리가 바로 목사의 자리가 아닐까? 그것이 바로 성도(聖徒)의 자리이며,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으로서 교회(敎會)의 자리이다.
피터 코리건은 <소비의 사회학>에서 “오늘날 백화점은 소비주의(Consumerism) 사원에서 예배를 보도록 유혹한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는 마치 중세 성당 같은 분위기가 모방되고 있는 반면 오늘날 교회는 백화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애를 쓰는 아이러니를 심각하게 지적한 것이다. 더 이상 생명과 소망을 노래하지 못하는 공동묘지 같은 교회, 지나간 추억을 붙들고 있는 박물관 같은 교회, 종교적 취향을 충족하기 위한 극장 같은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이 엄습한 현장 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생명을 노래하며, 은총과의 깊은 만남을 바라보게 하는 곳이 교회이다. 현실에 드리워진 죽음의 두려움에 같이 함몰되지 않는 것, 깊은 슬픔의 시간 속에 의연히 서 있는 것이 바로 성도와 교회, 목사의 최선이 아닐까.
/이기진 목사(강남C공동체)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