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최원준 목사의 Talk Talk 열왕기 16 : 엘리사의 뼈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심성은 착하지만 가난한 온달이 운 좋게 고구려 평강왕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나라의 용감한 장군으로 성공한다는 인생역전극이다. 그래서 아내 잘 만나 인생 핀 남자를 ‘온달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에 따르면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전해주는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성공신화가 아니라 ‘신의(信義)’를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평강공주와 결혼해 무술을 연마한 끝에 무관이 된 온달은 신라가 고구려의 한북지역을 차지하자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전한다. 그는 “내가 신라에게 뺏긴 땅을 다시 찾기 전까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는 전사하고 만다. 부하들이 그의 시신을 관에 넣어 운반하려고 했지만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뺏긴 땅을 되찾지 않고서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는 온달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던지 죽어서도 그 맹세를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식을 들은 평강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위로했을 때에야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고 북이스라엘을 아람 군대로부터 지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살았던 엘리사. 그의 스승 엘리야는 불말과 불병거가 나타나 회오리바람에 들려 하늘로 올라갔지만 그는 병들어 죽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열왕기하 13:20~21절은 비록 단 두 구절이지만 그가 죽어 뼈만 남았어도 생명의 역사를 일으켰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모압 사람들은 자주 떼를 지어 나타나 북이스라엘을 습격하고 약탈했다. 대규모 군대가 아니라 강도떼였던 것 같다. 한번은 장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려고 할 때였다(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속에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동굴에 안치한다). 모압 강도떼가 출몰한 것을 보고 겁이 났던지 그만 시신을 엘리사의 뼈가 있는 동굴에 던져 버리고 가버렸다. 그런데 그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살아나 두 발로 일어나게 됐다!
엘리사가 살아있을 때는 엘리야의 옷으로 상징되는 바 갑절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숱한 이적을 행했다고 할 수 있었다고 하자. 실제로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때는 엘리사가 펄펄 살아있을 때였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의 시신은 이미 썩어 없어졌다. 뼈만 남았다. 시간이 제법 지났다는 말이다. 그런 죽은 사람의 뼈가 어떻게 시신을 다시 살릴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구약외경에 속하는 ‘집회서’ 48:13~14절은 엘리사의 이런 놀라운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란 하나도 없었고 무덤 속에서도 예언자로서의 직분을 다하였다. 그는 살아 생전에 놀라운 일들을 행하였으며 죽은 후의 업적 또한 신기하였다”(공동번역 개정판)
이것은 엘리야가 승천할 때 엘리사에게 임하셨던 성령이 생명의 영이요 부활의 영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엘리사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임했던 성령이 위대한 것이다. 육신은 없어져도 성령은 이 땅에서 생명의 역사를 계속해 가신다. 에스겔이 봤던 환상 역시 마찬가지다.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은 결코 살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오자 살아 일어나서 큰 군대가 됐다. 이 환상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여준다. 그런 것처럼 엘리사의 뼈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 사건 역시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계시록을 쓴 요한 역사 환상 가운데 놀라운 생기의 역사를 보았다. 계시록 11:7~11절은 짐승(사탄의 세력)이 두 증인(교회를 상징)을 죽인다. 이것은 교회가 복음을 증언하다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순교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자 그들이 발로 일어서게 된다. 믿는 성도는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지만 생명의 영께서 다시 살릴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덤에서 죽은 자가 집단으로 살아나는 일이 마태복음 27:51~53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 기이한 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장차 있게 될 성도들의 부활을 미리 보여준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을 전해주고 있다면, 마태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순간 예수님의 부활은 물론이요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성도들의 부활까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골고다’란 ‘해골의 곳’(the Place of the Skull)이란 뜻이다. 해골들이 있는 곳에 우리 주님의 보혈이 흘러내리자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오직 성령만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생명이다.
/최원준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