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방법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방법
전라남도 완도에서 배를 타고 30여 분 들어가면 외딴섬 ‘사후도’가 나온다. 차도 사람도 구경할 수 없는 시골이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작은오빠가 군산에 취직하면서 나도 전학을 가게 됐다. 공부를 잘했던 나를 대처에서 가르치고 싶어 한 오빠 덕이다.
엄마 품을 떠나 객지 생활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를 따라 간 교회가 객지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당시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소아마비 환자였는데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 주셨다. 목사님의 당당한 모습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교회에 다니지 못했다. 시댁은 예수를 믿지 않았고, 대쪽 같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들과 함께 살면서 교회를 다니기 것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남편과 함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 너무 바빴다. 이로 인해 시어머니와 갈등도 생겼다. 가족과의 갈등은 정말 지옥 같았다. 이혼까지 고려할 정도였다.
어느 날 새벽. 꿈속에서 하나님이 “어서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내면 깊은 곳에 잠든 신앙이 되살아났다.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 점차 시어머니와의 갈등도 풀어나갔다. 남편도 자연스레 교회에 다니게 됐다.
그 덕분일까. 가정은 화평해지고,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했다. 도서유통 사업을 하는 우리부부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업을 일궜다. 연 매출이 수십억 대에 이를 만큼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방배동에 사옥도 지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남편이 사업상 여러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기에 술과 담배를 끊지 못했다. 교회도 자주 나가지 못해 혼자 교회를 나가는 날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부부에게 위기가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005년, IMF 후유증이 있던 시기. 성격 좋은 남편이 술김에 형편이 어려운 거래처 사장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에게 10억 가까운 백지어음을 빌려주었다. 당시 회사 대표는 나였다. 남편은 내 결재도 없이 임의로 어음을 내주었다. 회사에 큰 타격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잦은 다툼을 벌였다. 남편은 자책하며 술을 끊지 못했고, 고통은 지속됐다.
그날도 싸움 끝에 잠들었는데 새벽 녘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딸아, 네게 많은 것을 주었는데 왜 남편이 잃은 돈에 연연하느냐.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번쩍 생각이 스쳤다. “하나님이 채워주셨는데 무엇을 바라나. 다 내려놓자”고 다짐했다. 자는 남편을 보니 수척해져 있었다. 그날 이후 믿음의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게 됐고, 격려와 인정을 통해 남편의 자존심을 되찾아주었다. 그간 쌓아온 신용으로 은행의 대출을 얻어 빚 문제도 해결했다.
하나님은 내게 많은 것을 주셨다. 시골 출신 빈털터리에게 많은 물질을 주셨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맡길 줄 아는 믿음과 지혜, 말씀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남편이 5년 전 갑상선 암에 걸렸지만 우리는 그 위기 또한 잘 극복했다. 나는 역경이 닥칠 때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했다. 우리 부부는 온누리교회 많은 사역들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일에 앞장서고 있다.
많은 이들이 가정에서 고난을 겪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남편을 칭찬할 때 더 큰 선물이 예비 된다. 기쁨과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 김정란 권사(서초D공동체)
작성자 김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