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목사의 신앙에세이 4
그러므로 웃자!
구한말 선교사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그들은 조선인들을 채용해 한국 땅에 정착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 집에서 일을 하게 된 한 조선인이 말끝마다 “(아이고) 죽겠네!”를 연발했다. 선교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을 파송한 선교본부에 보고서를 보냈다.
“이곳 조선인들을 보면 늘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들은 매우 신실합니다. 조선인들은 말끝마다 ‘주께 있네’를 외치면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렇다면 찬양 가사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생명! 죽겠네. 능력! 죽겠네. 소망! 죽겠네. 주 안에 있네~”
이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그냥 한번 웃었다면 됐다. 웃음은 부패하기 쉬운 마음의 방부제다. 세상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품을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 준다. 때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주며 세상을 내 편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웃으면 건강해진다. 고대 그리스 의사 밀레투스(Miletus)는 웃음을 의미하는 헬라어 ‘겔로스(Gelos)’는 ‘헬로(Helo)’에서 왔고, 여기서 나온 단어가 바로 건강을 의미하는 ‘헬스(Health)’라고 했다. 웃음은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근육을 강화시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들을 공격하는 T세포를 증가시킨다. 인체 면역기능을 향상시킨다. 책 <질병의 해부>에서 노먼 커즌스는 ‘10분간 웃으면 2시간 동안 고통이 없으며, 수면제 없이 잠들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 몸의 650개 근육 가운데 231개가 웃을 때 움직인다. 웃으면 건강해진다.
웃음이 육체의 건강에만 유익한 것이 아니다. 영적인 건강에도 유익하다. 비본질적인 일에 집착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이들을 책망하실 때 예수님은 “눈 먼 소경이여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마 23:24)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하루살이는 아람어로 ‘갈마(Galma)’이고, 낙타는 ‘감나(Gamla)’이다. 언어학에서는 이것을 애너그램(한 단어에 있는 철자들의 순서를 바꾸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일종의 언어 비틀기를 통해 재치 있게 말씀하셨다. 성급한 시몬에게는 ‘육중한 바위’란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의 성격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베드로를 보면서 많이 웃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웃음을 늘 가까이 두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우리의 영적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은 아마도 웃을 힘조차 없는 사람일 것이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는 “만일 천국에서 웃음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슴 속에 분노와 한을 품고 살아가는가? 상처 없는 이들은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상처를 녹일만한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다. 웃음은 피곤한 인생에게 건네는 생수와 같다. 관계 속에 얽혀있는 긴장과 압박을 풀어주고, 생의 여유를 갖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웃자.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즐거운 듯이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라. 즐거운 듯이 행동하면 우울해지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웃자.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기쁘다.
한 집사님이 “남편이 교회를 다니는데 아직도 강술에다 골초에요. 그런데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오셨다. 나는 이렇게 대답해 드렸다. “모르긴 해도 빨리는 가실 겁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 지금 웃어보세요. Smile!
/이기진 목사(강남C공동체)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