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목사의 신앙에세이 2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
기독교 실존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저서 <존재에의 용기>에서 인간이 가진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불안은 모든 사람과 사물 위에 두려움이라는 가면을 씌워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면을 벗겨내면 불안과 공포의 본래 모습이 나타나고, 가면이 드리웠던 두려움도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죽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날마다 죽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 조금씩 우리에게서 사라져간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사건은 죽음의 진행 과정의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연결된 공포는 상상의 산물이다. 죽음은 가면을 벗겨내고 정면으로 응시한다면 공포도 사라지게 된다.”
틸리히의 견해대로라면 불안과 공포, 심지어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도 정면으로 응시한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 이와 역설적으로 우리는 죽음을 더 이상 일상적으로 직면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당연히 죽음이 주는 두려움도 그만큼 증폭되었다.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으로 당시 약 2천5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유럽 인구의 50% 가까운 이들이 전염병에 희생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때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살자!)이라는 구호가 만들어졌다. 당장이라도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응시하면서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과 자기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생동(生動)하게 만들고 최선을 다하게 만들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 재미있는 사실은 맹자와 그의 어머니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는 점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사람이 죽음을 모르면 배움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했다.
중세 유럽의 매장지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중세의 묘지는 도시와 시골 할 것 없이 어디서든 가장 시끄럽고 분주하고 활기가 넘치고 상업적인 지역에 있었다”고 증언한다.
인생의 마지막 40년,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대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모세도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시 90:6)라고 노래하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있는 오늘을 감사할 것을 가나안 세대들에게 전수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지만 죽음을 직면한다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진지해지기 때문이다.
삶을 진지하고 즐길만한 현장으로 만들기 위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라는 예술분야가 발달했다. 해골을 비롯한 죽음의 상징을 담은 장신구, 반지 등 메멘토 모리 양식은 15~16세기 유럽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다. 그들은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받아들임으로써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하루라도 우리가 살아야할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한 번도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이기진 목사(강남C공동체)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