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
내적치유학교 수료 간증
이제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자매의 권유로 내적치유학교에 참여하게 되었다.
9살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이후 어린 동생 두 명과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살며 새엄마를 구했다. 아이가 셋이나 있던 30대 초반의 새엄마는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다. 잦은 부부싸움과 욕설이 난무했다. 싸움의 여파는 우리에게도 이어졌다. 공포 속에 살아야했다.
부모님은 집에서는 매일같이 싸웠지만 아무 일 없이 교회에 다녔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심한 분노를 느끼고 점차 하나님과 멀어졌다. 그렇게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보냈다. 남동생의 빈번한 가출과 탈선이 반복됐다. 나는 남동생을 감싸주기는커녕 부모님을 닮아갔다. 남동생에게 폭력과 욕설을 퍼부었다. “너는 우리집에서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동생을 저주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집에 올 때마다 돈을 요구하는 남동생은 폭력과 욕설로 가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폭력에 내가 물들고, 동생도 물들었다.
남동생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2년 전 남동생이 자살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 입술이 동생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는 운구를 들어줄 친구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책했다.
이 모든 책임이 가장인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돌처럼 굳어져 기도조차 나오지 않았다. 주일예배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내 신앙은 늘 제자리였다. 내 마음속에는 늘 분노와 화가 가득했다. 언제 폭발할지 몰랐다. 그 화살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향했다. 딸은 남편에게 펑펑 울며 “아빠, 엄마가 무서워요, 새엄마 같아요”라며 하소연했다. 그럴 때마다 “난 지극히 평범한 엄마”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막연한 마음으로 내적치유학교에 등록했다. 첫 날 강의부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용서 편지를 쓸 때는 차마 펜을 들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마음이 요동쳤다.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내 안에 있는 어릴 적 상처가 나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고통이 없어질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주님께 울부짖었다.
십자가 예식 때 회개했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내 안의 죄악들을 낱낱이 고백했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내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너를 사랑한다.”
비로소 참 평안이 찾아왔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부모님께 이제 한 걸음 다가가려 한다. 많이 서툴고 어렵지만 주의 보혈을 의지해 나가려 한다.
아직 나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이단에 빠져 헤매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교회를 부정하는 아버지가 바로 그 숙제다. 부모님은 내게 가장 큰 십자가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
/ 김선경(가명)(48기 내적치유학교)
작성자 김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