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김현실 목사의 신앙에세이 3

why, how, what

 

어린 시절 나는 목적과 목표라는 말을 혼동했었다. ‘북한의 적화통일은 변함없는 목적이고,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 목표를 세운다’는 문장으로 그 뜻을 구별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목적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 이유는 어느 강사가 왜(why)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강조했기 때문이다.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라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 중에서 사이먼 시넥이라는 사람의 강연이 특히 유명한다. 그는 ‘why, how, what’을 주제로 인상적인 강연을 펼쳤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what)을 하고, 이를 위해 어떻게(how) 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왜(why) 그것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왜’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원래 의도했던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왜 사는가? 살면서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이 물음을 새삼스럽게 고민해 보았다. 어린 시절 내 꿈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 마음에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성경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마 20:28)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나’인 것이다. 그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 나 자신이 매우 귀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에게 더욱 소중한 분이 되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소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목적한 것을 위해 기도하고, 내가 바라는 것을 위해 떼쓰며 부르짖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어느 학생에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학생은 “무엇을 할지 잘 모르겠지만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돈이 목적이 되어 살아가는 학생의 삶을 상상해봤다. 이 학생이 교사가 되면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까, 요리사가 된다면 어떤 재료를 선택해서 어떻게 음식을 만들까, 의사가 된다면 환자를 돈을 버는 수단으로 보지 않을까.
예수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우리 삶의 목적을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데 두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알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살아가야 한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목적은 나와 같은 인간이다. 예수님의 목적인 인간이 돈 때문에 인간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마저 팔고 있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악의 근원이고, 뿌리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때 기뻐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0).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5.-김현실브릿지33+-261x392

/김현실 목사(남양주 온누리교회)

작성자  김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