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목 목사의 신앙에세이 1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역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창조주가 인간의 몸을 입고 왔다. 왜 오셨을까? 목적이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명시되어 있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되 더욱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다.”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풍성히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생명이 풍성하다니. 오래 산다는 양(量)의 문제일까 아니면 잘 산다는 질(質)의 문제일까? 원어를 보면 이해가 쉽다. 생명이라는 단어는 ‘조에(zoe)’다. 영적 생명을 뜻한다. 영적 생명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생기와 활력이 충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라 생명력이 충만한 상태다. 성장기 청소년처럼 역동적인 모습을 뜻한다.
사역을 열심히 하던 어느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서는 발걸음이 힘겨웠다. 설교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내 안에 설교할 힘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막막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의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을 하십시오. 저는 못하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이었다. 찬양이 끝나고 강단에 올라섰다. 무엇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내 안에서 새로운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외부에서 부어지는 것이었다. 설교에 활력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문장 문장마다 기름 부으심이 있었다. 그날 성도들의 기도는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이 풍성한 생명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 풍성한 생명이 좌절과 무기력을 이겨내는 힘을 주었다. 그 분이 오신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교통사고와 암을 뛰어넘는다. 낙태율도 1위다. 죽음이 역사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과 무기력, 절망도 사망의 그림자다. 탄식이 나온다. 경제적으로 부흥을 누리고 있고, 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기회와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의 덫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때야말로 나라를 위해, 청년들과 차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새 생명이 강력하게 역사하는 땅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약속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죽음과 사망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육적 생명(프쉬켄)은 사망에 삼켜진다. 그러나 예수님 약속하신 영적 생명(조에)은 죽음을 이긴다. 그 약속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선다. ‘풍성히’ 얻도록 주신다’고 하셨다. 그 약속은 겨우 사망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넘치도록 부어지는 것을 말한다. 생명력과 활력과 생기가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희락과 화명이 열매 맺고, 창의와 도전의 열정이 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시대 우리나라에 필요한 생명이 교회를 통해 부어질 것이다.
청년부 J4U의 올해 표어는 ‘생명이 이기다’이다. 넘치는 생명력이 가득한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활력과 생기가 샘솟는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죽음이 생명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우울이 기쁨으로, 좌절이 열정으로 바뀌기를 기도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성취되기를 기도한다. 그 기도대로 양들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조준목 목사(대학청년부 J4U담당)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