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재미있는 선교지 이야기_힌두교와 불교의 나라 네팔

예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네팔의 여신 쿠마리

힌두교 여성이 소에게 절을 하고 있다.

힌두교 여성이 소에게 절을 하고 있다.

 

네팔 사람들은 다양한 생김새와 피부색을 갖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파키스탄,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김새와 피부색을 갖고 있는데 반해 네팔 사람들은 한 눈에 구분하기 어려운 편이다.
네팔 사람들은 피부색으로만 구분 짓지 않는다. 네팔 사람들의 혈통은 두 부류다. 크게 몽골계와 아리우스계다. 아리우스는 4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종파이고, 아리우스계는 인도와 이란이 섞인 민족을 의미한다. 몽골리안과 아리우스계가 혼합된 민족이 네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네팔은 다양한 민족이 섞인 땅이다. 그래서인지 종교도 두 개가 공존하는 나라다. 힌두교와 불교가 바로 그것이다. 힌두교인들이 사찰에 가서 참배 드릴 때 불교신자들은 힌두사원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문화가 있다. 모든 힌두교 행사와 불교 행사를 함께 기념하고 있다.
네팔은 하나님만이 살릴 수 있는 땅이기도 하다. 많은 부족과 인종이 함께 모여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교의 손길도 그만큼 많이 필요한 땅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교사와 선교단체가 수도 카트만두에 집중되어 있다. 네팔은 카트만두가 전부가 아니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일 뿐이다. 카두만두에만 선교자원이 집중되어 있으면 네팔 전체 인구를 전도할 수 없다. 네팔 사람들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루 빨리 복음을 들어야한다. 한 영혼도 놓치지 않고 전도하기 위해서라도 네팔에 더 많은 선교사와 선교단체가 필요하다.

 

사회와 가족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해외로

 

네팔은 농업에 의존하는 국가다. 공장이 없다. 네팔에 남아 있는 젊은 인력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해외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있다. 노후 대책을 준비하기 위해 해외로 돈 벌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네팔에 남아있는 미혼 남성들은 가난과 싸우고 있다.
네팔에는 헌법이 없다. 개인의 신앙과 자유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종교 자유를 위해 ‘세속의, 세속적인(secular)’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통 힌두인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네팔에서는 교회가 합법적이지 않다. 부동산을 소유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부자들은 계속 부를 누리고, 가난한 사람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네팔 사람들은 해외로 나가야만 사회와 가족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약 4만 명의 네팔 사람들이 매년 한국에 온다. 그들 중 99%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네팔 사람 중 60% 이상이 교회를 모르고, 5%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국내에 온 네팔 사람들이 주로 머무는 곳은 충청남도 아산이다.
안산M센터에서는 한국에 오는 많은 네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도도 멈추지 않고 있다. 네팔의 많은 부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하루빨리 네팔이 복음화 되기를 간구한다.
/ 바랏 목사, 만지라 사모(온누리M미션 네팔공동체)

 

<목회칼럼>

 

난봉꾼에서 목사로 변신한 청년

 

“내가 듣고, 알고, 경험했다고 믿는 복음이 과연 내 안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가?”
이번 여름, 캄보디아 아웃리치를 준비하면서 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던 질문이다.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YES”라고 외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캄보디아에서의 여정을 통해 열방을 향한 사랑과 눈물을 보여주셨고, 살아있는 복음의 능력을 확실하게 깨닫게 하셨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선교사님이 아주 특별한 형제가 있다며 깊고 깊은 시골마을로 우리를 데려가셨다. 아직 그 어떤 팀과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8시간 가까이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곳에서 우리는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듣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문란하기로 소문난 난봉꾼 ‘부은’이라는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그 형제의 배에 물이 차고, 수술이 필요한 위급한 상황이 되어 수도 프놈펜으로 가게 되었다. 병원에 갔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술비 때문에 낙심한 채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미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기독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그날이 성탄절이어서 진료를 하지 않았다. 잠잘 곳도 없었던 그 형제는 또 다시 낙심했다. “그냥 이렇게 시골로 돌아가서 죽게 되는 것인가?”하고 자포자기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다음날 꼭 병원에 가보라며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찾아간 교회에서 만난 전도사님이 복수가 찬 그의 배를 보고 예배당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산처럼 솟아있던 뱃속의 물이 전부 빠져나와 예배당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그 자리에서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마을로 돌아온 그 형제는 자신을 위해 했던 기도를 기억했다. 그리고 간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그 형제는 난봉꾼에서 믿는 자로 변화되었다. 그를 통해 마을에 예수님이 증거되기 시작했다. 말씀 한 줄 읽어보지 못했던 그 난봉꾼이 이제 목사가 되어 마을에 가정교회 12개를 세웠다. 400여 명의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정말 복음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증거되는 것이 합당하다. 선교사가 들어간 적 없는 곳에서, 글을 아는 사람이 손에 꼽히는 마을에서, 단 한 사람을 통해 예수라는 이름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났다.
우리 모두는 복음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 등잔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두어 그 빛을 온 집안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통해 빛을 내야한다는 가르침이다. 예배도, 구제도, 봉사도 열심히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켜진 등잔불이 부끄러워 그릇으로 덮어둔 채 살고 있다면,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이 더 이상 살아있는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펄펄 끓고 있는 물은 그대로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붙잡고 있으려고 해도 견딜 수 없다. 에너지로 채워진 물분자들은 서로를 주전자 밖으로 밀어어내기 때문에 뚜껑을 닫아도 들썩거린다.
우리 안에 있는 복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복음으로 변화된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열심히 증거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현석 목사(서빙고 차세대)

정현석 목사(서빙고 차세대)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