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행복한 왕자와 행복한 제비

 

동화에 나오는 ‘행복한 왕자’는 바보왕자다. 가만히 있었으면 행복한 왕자로 남았을 텐데 말이다. 그는 남들이 행복한 왕자라고 불러줘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왕궁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서 있다 보니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안쓰러워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자신의 일부분을 떼어주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어느 날 따뜻한 곳을 찾아 날아가던 제비가 왕자의 동상에서 하룻밤 머무르게 됐다. 그 밤에 제비는 행복한 왕자의 눈물을 맞고 그의 음성을 들었다. 왕자의 간청을 못 이긴 제비는 왕자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석을 전해주는 심부름을 했다. 한번만 해 주고 떠나겠다던 제비는 심부름을 하면서 묘미를 느꼈다. 병들어 죽어가는 소녀가 눈을 반짝이고, 굶어 죽을 사람이 살아나며,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웃음과 희망을 찾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런데 심부름을 하면 할수록 행복한 왕자의 모습이 점점 흉측하고 바보스럽게 변해갔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으로 날아갈 생각을 미룬 제비도 점점 바보가 되어갔다. 결국 왕자의 심장이 깨져 박살나던 날 제비도 동사하고 만다.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가 불행한 왕자로, 제비는 불쌍한 제비가 됐다며 혀를 찼지만  그때 비로소 왕자는 행복한 왕자로, 제비는 행복한 제비로 거듭났다.
‘예수바보행전’이 선포 됐을 때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가 떠올랐다. 크리스천에게는 전도의 사명이 있다. 전도는 밤중에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과 음성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석(복음)을 전달하는 심부름을 하는 것니다. “말로 하는 전도는 오히려 역효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해보기나 하셨어요?”라고 해주고 싶다. 전파하는 자가 없다면 복음을 듣지 못한다. 복음을 듣지 못하면 믿지 못한다. 믿지 않고 어떻게 주님을 부르겠는가. 삶과 더불어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반드시 기다리는 한 영혼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바보 제비 덕분에 진정한 행복한 왕자가 되었듯이 예수님은 전도자를 통해 전해진다. 
전도는 예수님의 심부름이다. 목숨을 걸어야하는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만의 특권이다.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예수바보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예수 바보들이여!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키워 몸을 만들듯이 훈련을 통해 전도근육을 만들어 보자.”
/ 박인숙 권사(전도폭발훈련)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