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김영숙 선교사 은퇴“잘 대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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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숙 선교사와 故 김사무엘 목사 부부.

 

“잘 대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선교사입니다. 목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누리교회는 저를 목회자 반열에 세워주시고, 일본 선교를 위해 조그마한 힘을 보탤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제 남편은 2004년 소천한 故김사무엘 목사입니다. 우리 부부가 온누리교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6월부터였습니다.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우리 부부는 하용조 목사님이 선포한 2천1만 비전을 따라 온누리교회에 왔습니다. 당시 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천1만 비전을 품은 온누리교회에 와서 청년들을 훈련시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도와달라.”
당신이 선교를 하고 싶은데, 선교에 대해 잘 모르니까 남편에게 온누리교회 선교에 동참해 줄 수 없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때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렇게 남편과 저는 선교훈련센터를 만들고, 청년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차로 훈련받은 청년 12명을 중국으로 보냈습니다. 정말 강하게 훈련시켰습니다. 1년 훈련시키고 2년 동안 현지에서 선교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오사카 온누리교회를 개척하라는 하 목사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때(2000년 4월)부터 선교훈련을 시키는 동시에 매주 오사카를 오가는 강행군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에는 양지에 선교훈련센터를 세우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당시 양지는 영적으로 정말 척박하고 힘든 곳이었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땅 밟기를 하면서 그곳에 선교훈련센터를 세웠습니다. 또한 남편이 이라크에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비전을 품고 2003년 10월부터 이라크에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병을 얻어 예상보다 빨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2월 소천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미국 선교단체의 파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미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는 나에게 하 목사님이 “온누리교회에 함께 있어주세요. 선교사역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2004년 6월부터 지금까지 서빙고 일본어예배를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옆에서 일본어예배를 섬길 요량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일본어예배 담당교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책임이 늘어났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직분을 무사히 섬길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감사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일본어예배가 러브소나타 집회를 섬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러브소나타를 시작할 당시에는 일본어예배부의 역할이 미비해서 아쉬웠습니다. 더 많이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러브소나타 집회가 계속 진행되면서 일본어예배부가 많은 부분에서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통역과 번역 감수는 물론, 후속 프로그램으로 열리는 일대일 제자양육 세미나에도 일본어예배부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양육자들이 일본인 목회자와 사모들에게 직접 일대일 제자양육 해주는 것이 미약해 보일지 몰라도 일본의 교회를 변화시킨다고 믿고 열심히 섬겼습니다. 일본 교회들의 사정이 열악합니다. 목사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대일 제자양육을 통해 일본교회 양육자를 만드는데 쓰임받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사건, 선교사건 상관없이 잘 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선교사의 직분을 내려놓고 평신도로 돌아가 여러분과 함께 섬기겠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김영숙 선교사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