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고백(告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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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혼자 서재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책을 보다가도 예전 같지 않은 몸이 신호를 보내올 때면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가만히 눈을 감곤 한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지난 일들이 주마 등처럼 떠오른다. 한국전쟁 중 우연히 떠나온 삶의 유랑이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될 줄은 몰랐 다. 정들었던 고향 집과 낯익은 풍광, 가족과 함께했던 유년기, 함께 자란 말과 양 떼들까지,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어제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부지런하셨던 부모님 덕에 비교적 유복하게 보냈던 어린 시절도 잠시,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아버님께서는 온갖 어려움에도 어떻게든 자식들을 지키고 공부시키려 노력하셨다. 두 발의 총상으로 천국 바로 앞까지 갔으나 소대장의 도움과 사경을 헤매던 나를 들것으로 날 라준 미군 병사들 덕분에 깨어날 수 있었다. 전역 후 아버님께서 바라시던 배움을 이어가기 위해 대학교 합격증을 가지고 캠퍼스로 달려갔는데 등록금 낼 돈이 없어 절망하며 되돌아오던 캄캄한 밤 열차 화물칸에서 흐느끼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일제 치하에서부터 해방, 분단, 한국전쟁과 재건,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까지 그야말로 현대사 를 관통한 우리 세대 중에서 고생과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엉킨 실타래 마디마디를 풀 듯 삶의 고비 고비를 넘겨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하고 감사할 제 목이다. 내가 숱한 우여곡절의 순간과 세월의 강을 건너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많은 분들의 사랑과 도움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스스로를 지탱하게 해준 힘과 판단의 준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부모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기대다. 비록 전쟁 중에 헤어졌지만 나는 언제일지 모를 재회를 기약하면서 스스로 ‘삶의 매 순간, 결코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려 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한 결 같이 가다듬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이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에도 시련을 겪고 사선에 설 때마다 나를 지켜주셨고, 때로는 채찍과 인내와 재기의 능력 을 주셨다. 고난과 선택의 과정에서 늘 함께 하시고 위로해 주셨던 사랑의 하나님 날개 밑에 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땅 위에 나를 세워주신 부모님의 기대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나의 길잡이이자 한결같은 지향점이 되었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신 몇 분께 감사드린다. 전쟁 중에도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를 위해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해준 이언상 전 우, 청년기 친동생같이 아끼며 믿음을 갖게 해주신 김석홍 목사님과 어머님 같은 김병인 권사 님, 분에 넘치는 명예장로의 직분을 주신 하용조 목사님과 이형기 사모님, 한 가족처럼 사랑 해 주시고 한 결 같이 배려해 주시는 이재훈 목사님과 이정선 사모님께 감사드린다. 시간이 흘러 어머님께서 구워주신 찹쌀떡 세 개와 손수 떠 주신 양털 스웨터를 입고 집을 나 섰던 17세 소년이 어느덧 미수를 맞이하게 되었다. 잘한 것도 없는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은 후손들이 앞으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하더라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다. 오늘날까지 내 삶의 모든 과정에 묵묵히 동행하면서 항상 곁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귀한 아내 주경순에게 감사하다. 이봉준 아버님과 전영준 어머님께 이 글을 올려드린다. 
  • / 이용만 명예장로(OCC공동체)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