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광야에 살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한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그 사람은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예언의 말씀을 선포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많은 사람이 그 앞에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 예루살렘, 온 유대, 요단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된 구원자’임을 자칭하며 ‘새로운 사회 건설’을 약속하는 여느 무리와는 분명히 달랐다. ▼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오랜 세월 쌓아온 기득권이 아침이슬처럼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떠도는 소문처럼 그 사람이 메시아라면 얼른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게 뜬소문이라면 그가 사람을 더 모으기 전에 없애버려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그들이 보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네가 누구냐?”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네가 엘리야냐?” “나는 아니다.” 또 물었다. “네가 그 선지자냐?” “아니다.” 속 시원한 답을 듣기 원한 그들이 재촉했다. “그럼 너는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라. 너를 누구라 하랴?”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 소리는 말씀을 실어 나르는 도구다. 말씀이 없는 소리는 공허 그 자체다. 소리의 존재 이유는 말씀에 있다. 말씀은 곧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시다. 세례 요한은 그 분 때문에 자기가 존재하며 자기의 삶에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 자기가 아닌 것에 대한 분명한 자각,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기에 세례 요한은 ‘여인이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였다. 누가 묻기도 전에 ‘바로 자기’라며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자기의 한계를 드러냄으로 참 기쁨을 누렸던 세례 요한과 같은 한 사람, 하나님 앞에 정말 겸손한 바로 그 사람이 그립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 3:29). 아멘./ jsc@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