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마태복음 4장 1절은 ‘그 때에’로 시작한다. 그 때가 어느 때인가? 지난 30년, 갈릴리 목수라는 삶을 떠나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삶,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실 때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자 하늘이 열릴 때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당신 위에 임하심을 보셨을 때다.

▼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기막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을 때다. 이런 엄청난, 참으로 엄청난 은혜를 누리고 있을 때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다. 광야란 황량한 벌판을 말한다. 그 어떤 도움도 구할 수 없고 그 무엇도 감추지 못하는 곳이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광야다. 광야에는 마귀의 시험, 꿈에서 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고 모든 시험,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령님은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 1).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로 들어간 예수님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철저하게 깨닫기를 원하는 하나님, 그리고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시험이나 문제일지라도 그것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만 바라보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한 일은 밤과 낮 사십 일을 금식하신 것이었다. 광야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자기에게 남아있는 모든 힘을 떨쳐내는 금식을 40일 밤낮으로 하셨다.

▼ 엄청난 문제 앞에서 ‘나’를 철저하게 내려놓으셨다. 사람으로서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것, 나의 생각과 의지, 그리고 나의 방법과 결단을 모두 포기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에만 온전히 매달리셨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일이요,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 2). 아멘.             / jsc@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