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2010.11.28)

온누리

 

 

둘째 아들이 꿈꾸는 세상은 따로 있었다. 고리타분한 아버지의 집과는 달리 신천지가 열리는 세상이었다. 돈만 있으면 정말 멋지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 자기의 몫을 분배받았다. 자기가 꿈꾸는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마침내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을 떠났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나 동경해왔던 세상, 먼 나라로 떠났다.

▼ 돈이 있었기에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허랑 방탕’, 모든 것을 잃었다. 게다가 흉년까지 겹쳤다. 돼지가 먹은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자 하나 주는 자가 없었다. ‘곤두박질’, 둘째 아들은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와서야 환상에서 깨어났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 환상이 깨어지자 추하고 초라한 자기의 벌거벗은 모습, 참 자기의 모습이 보였다. 자기가 추구했던 그 행복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자기가 선택한 삶 아버지 집을 멀리 떠난 삶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우쳤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아버지 집이구나!’ 거짓 행복이 아닌 참 행복을 누리기 위해, 거짓 자아가 아닌 참 자아로 살아가기 위해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아버지 집에서 누리는 ‘풍성함’이 그리웠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7). 절망의 깊은 수렁에 이르러서야 어떤 경우에도 아들을 믿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의 중심을 버티고 있던 ‘이기적인 나’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아버지’가 자리 잡았다.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눅 15:18)라며 대성통곡하였다.

▼ 마음의 중심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음이, 하나님을 떠남이 죄임을, 그래서 아들이라 불리기도 너무 부끄럽다고 고백하였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 15:17~19). 둘째 아들이 영원히 누릴 참 행복의 문은 이런 ‘회개’로 열리기 시작했다. 아멘.                  / jsc@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