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렸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눅 15: 1). 이런 수군거림에 대해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와 ‘한 드라크마’, 그리고 ‘두 아들’을 비유로 대답하셨다. 두 아들의 이야기다. 세리와 죄인들이 둘째 아들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첫째 아들로 비유되어 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요청하였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눅 15:12).
▼ 유산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의 분깃을 먼저 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버지 곁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둘째 아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배려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직 ‘나’, ‘자기’만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자기가 내뱉은 말이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아버지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야기될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불편한 존재요, 걸림돌일 뿐이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 중심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요청을 허락하셨다.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눅 15:12). 마음이 떠나면 그 어떤 것도 아버지 곁을 떠나려는 아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 천지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도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 무능하신 하나님, 당신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 ‘자유의지’로 당신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면 당신도 우리를 붙잡을 수 없다는 참으로 무능하신 하나님,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일지라도 ‘제 스스로 돌아오기’만을 끝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그냥 기다리시는, 그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 16:34)를 토설하며 십자가의 그 처절한 고통까지를 감내하셔야 했던 ‘철저하게 무능함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전능한 사랑’이었다. 아멘. / jsc@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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